너 밖에 들리지 않아, 오츠 이치
오츠 이치가 한국에 알려져 있는 이미지는 [살인자]라고 할 수 있다. 아, 물론 오츠 이치가 어디에선가 총기 난사 사건을 벌였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츠 이치가 살인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뛰어나다는 얘기일 뿐이다. 이미 국내에 출간된 단편집 [ZOO]만 보더라도 오츠 이치가 얼마나 살인이라는 소재에 능숙한지 알 수 있다. 사실 오츠 이치를 한국에서 소수의 일본어 독해 가능자 사이에서 유명하게 한 것은 [GOTH]라는 물건이다. [GOTH]는 만화책으로도 나와 있어서 불법 번역본으로 본 적이 있다. 살인에 대한 무윤리적인 태도와 끝없이 잔인한 살인마와의 대결이 감각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였다. 만약 [GOTH]의 이미지로만 오츠 이치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너 밖에 들리지 않아]는 상당히 이질적인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너 밖에 들리지 않아]는 소년과 소녀의 애틋한 감정을 자극하는 아기자기한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표제작인 [너 밖에 들리지 않아 -calling you]는 마치 시월애를 연상시키는 사랑 이야기다. 전형적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이기도 하고 일상에서 환상으로 옮겨가는 익숙한 구조를 차용하고 있다. 표제작에서 주인공 소녀는 머릿속에 있는 휴대폰으로 시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상대와 이야기를 나눈다. 인터넷에 익숙한 한국 신세대라면 이것이 인터넷을 통한 교류의 은유임을 바로 깨달을 것이다. [접속]을 통해 한국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 구조인 "얼굴을 모르는 사람과 소통하기"는 [키다리 아저씨]의 현대적인 변주에 불과하다. 과거에는 편지를 통해 이루어지던 것이 기술의 발전을 통해 컴퓨터 상으로 이루어진다. 오츠 이치의 소설에서는 컴퓨터가 단지 가상의 휴대폰이라는 환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오츠 이치는 매우 영리한 작가다. [너 밖에 들리지 않아]의 강조점은 사실 사랑이야기보다는 휴대폰으로 상징되는 현대 사회의 소통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휴대폰이라는 소재에 대한 집착은 사실 현대의 작품들에서 자주 보이는 경향이다. 1인 애니메이션 제작자로 성가를 드높은 신카이 마코토의 [별의 목소리]를 보아도 휴대폰은 세계와 나를 이어주는 유일한 매개체로 등장한다. 휴대폰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이유는 그만큼 일본의 휴대폰 보급률이 높다는 물리적인 근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물리적인 이유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휴대폰을 너나없이 쓰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은 다들 잘 알 것이다.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의 수가 마치 그 사람의 인맥을 상징하는 것처럼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현대 한국의 인간관계란 휴대폰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츠 이치는 이 점을 매우 잘 알고 있고 작품 내에 적절하게 녹여내고 있다. 더욱이 작품의 주인공이 아직 미성숙한 청소년이라는 점이 휴대폰이란 소재의 울림을 증폭한다. 학교에 다닐 때는 성적이 세상 모든 것의 기준 같고, 친구와의 관계가 인생의 잣대 같기 마련이다. 주인공 소녀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설정만큼 그녀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오츠 이치는 환상물에서 자주 쓰이는 기법을 능숙하게 사용하면서도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 또한 놓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너 밖에 들리지 않아]의 오츠 이치가 발산하는 매력이 위치한다. 두번 째 단편인 [상처]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상처]는 타인의 몸에 난 상처를 자신에게 옮길 수 있는 소년을 다룬다. 극도로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된 소년은 자신을 무의미한 존재로 생각한다. 그에게 생긴 신기한 능력 - 상처를 옮길 수 있는 능력은 어떤 의미에서는 구원이다. 아무도 상처 입지 않는 세계. 우리 모두가 꿈꾸고 있는 세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소년은 아무도 상처를 입지 않기를 바라며 자신의 몸에 타인의 상처를 옮긴다. 소년은 시간이 지날수록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그의 유일한 친구는 소년에게 손을 내민다. [상처]는 오츠 이치가 사회적인 차원에서 글을 쓸 수도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러나 [상처]의 강조점은 의식의 개선이나 환기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츠 이치는 어떻게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너져가는지, 상처투성이 세상에서 순결한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 작품인 [꽃의 노래]에서는 내면 묘사에 대한 오츠 이치의 욕망이 본격화된다. 중편에 가까울 정도로 긴 분량을 지닌 [꽃의 노래]는 미스터리 형식에 환상적인 요소를 도입하는 매우 장르적인 작품이다. 그럼에도 주된 내용은 상처 입은 자아가 순결한 존재를 통해 치유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내면의 변화를 좇아가고 있다. 그래서 사실 좀 지루한 작품이다. 단편집에서 몰입도나 흥미의 순위를 매겨 보자면 [너 밖에 들리지 않아], [상처], [꽃의 노래] 순이다. 그러나 문학적인 완성도- 다르게 말하자면 섬세함을 고려한다면 역순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 순위는 작품의 완성도에 좌우된다기 보다는 개인의 독서 취향에 더 좌우될 듯하다.
오츠 이치는 양면성을 가진 작가다. 능숙한 이야기꾼으로써 반전을 선사하고 환상적인 소재를 제시하는가 하면, 소녀와 소년의 내면 심리를 그려가며 유약한 면모를 보인다. 유리처럼 깨질듯이 순수한 존재를 그리는가 하면 욕지기가 나올만큼 끔찍한 묘사를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려낸다. 눈 밝은 독자라면 [ZOO]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양면성을 좀 더 순화된 형태로 이 단편집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츠 이치의 양면성에 당황할 독자도 있겠지만, 이 단편집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된 양면성을 확인한다면 그가 진정으로 잠재력 있는 작가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