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의 문제는 단 두가지다
하나는 국내에 실력있는 창작자가 없다는 선입견에 경도되어 무조건 해외의
창작자를 추종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런 해외 수입 문화에 경도된 나머지 실력있는 국내 자생 창작자를
못 알아본다는 것이다.
나는 어쩌면 퇴마록의 부활이나 재림을 꿈꾸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퇴마록의 성공 요인을 호러와 무속, 무협의 오묘한 조합이라고들 했다. 실제로
공포물로 분류되기도 한 퇴마록은, 현재 시점에서 바라보자면 라이트 노벨이라
불리는 소설군과 매우 유사하다. 그 대단하다는 [한 권에서 끝내기]도 퇴마록은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사실 장르의 특징을 그런 식으로 물리
적인 잣대로 잡아내는 건 웃기지도 않는 일이고 아무런 의미도 없긴 하지만,
어쨌든 간에 퇴마록이 신전기물의 여러가지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본 만화 풍이라느니 무협의 재탕이라느니 하는 얘기가 많았지만 퇴마록
이후로 아무도 같은 장르로 성공하지 못했고 10년이 훨씬 지나서야 겨우
라이트 노벨이 수면 위로 올라오며 그 형태적 유사성을 따지는 수준에
도달하였다. 퇴마록의 성공 요인은 다분히 시류영합적인 것이었다. 인터넷의
발달과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에 대한 수요 증대, 곧 불어올 판타지 열풍의
전조, 이념 붕괴 시대와 곧 다가올 IMF를 모르고 치솟았던 경제 상황 등이
종합적으로 맞아떨어졌다. 물론 퇴마록이 잘 쓰여진 작품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광풍은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할 정도로 엄청났다.
진짜 퇴마록 한 권 없는 집은 없다는 말이 돌 정도로 엄청난 열풍이 불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퇴마록의 정체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때문에 지금
와서 일본에서 수입된 라이트 노벨을 읽으면서 퇴마록의 진가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런데 라이트 노벨이 생겨난 시점도 사실 퇴마록이 집필된 시점과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다. 거의 동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퇴마록은 진정
시대를 앞서갔던 것이다. 그 적자는 판타지 열풍이고 퇴마록은 무협 열풍의
적자다. 60년대에 처음 소개된 정협지를 필두로 70~80년대 수상한 시대에
수입 무협과 창작 무협이 세로줄로 출간되어 나왔다. 사람들의 재미있는
소설을 읽으려는 욕구는 과거에도 존재했다. 단지 형태와 지칭하는 단어가
달라진 것 뿐이다. 무협에서 판타지로, 그리고 라이트 노벨로. 최근에는
BL이라는 여성들의 포르노로. 추리나 로맨스, 호러도. 어쨌든 현대는
다양성의 시대니까. 그런 다양성을 포괄할 수 있는 단어가 라이트 노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과연 그런 정의로 통용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아, 그리하여 나는 퇴마록을 다시금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멋진 시작에
어울리는 멋진 결말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