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책/오늘 읽은 판타지

눈 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나나나나1234 2008. 2. 23. 14:20

 지난번 대선 때 투표율이 얼마였는지 기억하는가. 물론 나도 기억하지 못

한다. 검색해보니 2007 대선 투표율은 62.9%였다. 이른바 선거 때마다

나오는 최저 투표율 이야기다. 투표율은 다들 잘 알다시피 87년 13대 대선

을 최고점으로 하여 계속 하락해왔다. 87년이라면 막 민주화가 움트던

시기로 아마 국민들이 가장 정치에 관심을 가진 때가 아닌가 한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오면서 실질적으로 군부지배가 종식되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쳐왔다. 그러면서 국민들은 자기 손으로 뽑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재미에 질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 놈이 그 놈이다라는 얘기는 정말 배부른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금껏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아 본 적이 5번을 넘지 않는다.

시간으로 따지면 겨우 20여년 정도를 선거라는 재미있는 놀이를 해본

초보들이다. 그런데 벌써 게임이 재미없다고 손을 놔버리다니 이건

정말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인지 어떤 건지

인터넷을 사용하는 젊은 층에서는,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정치적으로

최소한의 의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은, 투표를 하자고

독려했다. 투표 독려란 사실 선관위 소관이지 인터넷을 하는 젊은이

소관은 아니다. 게다가 보통 젊은층보다는 노인층의 투표율이 높다는

속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16대 대선 당시의 특수한

사정도 있지만 그런 건 논외로 하자.) 이 속설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다. (통계 찾기가 귀찮다.)

 

 우린 가끔 정신 지체 장애인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모습을 tv 생중계로

보곤 한다. 마치 그것이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모습을 상징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그것 우민정치의 비틀린 패러디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할 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우린

그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피를 흘렸고 갖은 지랄을 떨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과연 기권하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 만큼 가치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의문일 수 있다. 아마 대다수의 생각은

이럴 것이다. 기권은 독재자를 뽑는 것보다 나쁘다고. 왜냐하면 기권표는 권리

위에서 잠자는 것이요, 세상의 불의에 대해 침묵으로 동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주제 사라마구. 노벨상까지 받으신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무효표는, 기권은, 우리의 신성한

권리인 한 표보다 위대할 수 있다.

 

 침묵은 결코 동의가 아니다.

 

 

 [눈 뜬 자들의 도시]는 [눈 먼 자들의 도시]의 속편이다. 전작이 이번에

블록버스터로 제작된다는데, 대략 도시 사람들이 다 눈이 머는 [걷는 식물

트리피드]필이 될 것 같다. 직접 보지 않아서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좀 잔인하다고 한다. 눈 뜬 자들의 도시는 전작과 같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선거에서 시작한다. 묘한 긴장감과 함께 시작되어 알 수 없는 열기로

끝난 이 선거는 놀랍게도 과반수 이상의 무효표를 발생했다. 이른바 백지투표.

정부는 이에 대해 수많은 검토를 한다. 결국 도시에 게엄령이 선포되고 정부는

도시를 포기한다.

 

 이 소설에서 재미있는 점은 백지투표의 결과가 정부의 전복이 아니라 정부의

통치 포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정부는 엄청난 비율의 무효표를 쿠데타에

가깝게 규정한다. 그러나 정부의 해결책이란 겨우 도시에서 떠나는 것이다.

행정력 부재, 무정부 상태를 그 무엇보다 더욱 강력한 제재 수단으로 본 것이다.

주워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근대적인 의미의 국가란 폭력의 독점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베버 얘기였던가. 어쨌든. 그렇다면 국가가 더이상 국가이기를 포기했을

때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끔찍한 살육과 강탈과 강간과 소요가 모든 도시를

휩쓸게 될까.

 

 주제 사라마구는 처음부터 스트레이트를 날리지만 결정타는 뜸들이는 타입이다.

순문학 진영의 거장답게 그저 담담하게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낼 뿐이다.

우리가 구성한 정부가 얼마나 어리석은 방식으로 국민을 이해하고 있는가. 또

그들의 결론은 얼마나 엉터리로 내려지는가. 국가가 국민을 이해하는 방식이란

주도면밀한 감시와 조사, 취조 뿐이다. 게다가 국민은 결코 진실을 말하는 법이

없다. 왜 백지 투표를 했는지, 누가 백지 투표를 했는지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비밀 투표를 했고 아무도 대답을 강요할

수 없다. 그들은 침묵한다.

 

 자, 그들이 침묵한다면, 혹시 이건 착오가 아닐까. 그래서 선거를 다시 치르기로

한다. 결과는 더 높은, 거의 100%에 가까운 무효표. 이 침묵보다 더 강력한 연설을,

시위를, 주장을, 사상을 당신은 듣거나 본 적이 있는가. 정부는 혼란에 빠진다.

너는 어느 편이냐. 찬성이냐 아니면 반대냐. 흑이냐 백이냐.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그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마침내 도시에 스스로 타인을 다스릴 수 있다고 자신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자,

사람들은 거리로 나온다. 폭력도 아픔도 고통도 소음도 그곳에는 없다. 그들은

스스로 거리로 나와 침묵으로 가득한 행진을 한다. 거리는 어느 때보다 시끄럽고

조용하다. 시민들은 어느 때보다 정치적이고 비정치적이다. 다시 한 번 나는 침묵하건대,

침묵은 동의가 아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 책을 오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주제 사라마구

할아버지는 결코 대책없는 낙관주의자가 아니다. 그의 소설은 낙관주의

같은 것보다 좀 더 심원하고 감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