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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현대 백화점 지하로에서

나나나나1234 2008. 4. 3. 17:59

 밤이, 단어가,

 

 어떤 밤에 내뱉은 단어가 생각나는 때가 있다. 내가 아직 10대였을 때

아직 아침이 오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신촌에 있는 현대 백화점 지하에

있었다. 그곳은 지하철로 연결되는 기나긴 통로였다. 지하철이 끊기자 지하로는

노숙자와 갈 길이 없는 연인과 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술에 취한 어린아이들로

채워졌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나는 대개 혼자이길 좋아하지만 그 날 밤에는

내 옆에도 어린아이 한 명이 있었다. 나와 그는 어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신파조에 젖어서 말했다.

 

 "오늘 여기서 이렇게 말한 것도 다 잊겠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도

못할 거야."

 

 "슬프네요."

 

 오늘 수업 시간에 교수가 같은 요지의 말을 했다.

 

 "너흰 ktx에 타서 차창을 바라보듯이 내 수업을 듣고 있다. 난 너희들 앞에서

광대짓을 하고 있고."

 

 "이 수업을 기억도 못할 거다."

 

 맞는 말이다. 나는 나와 함께 술을 마셨던 그 아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그와 나눈 말과, 그 날 밤 지하로에서 나눴던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 때문에

나는 아직도 그 날 밤의 일을 떠올리곤 한다.

 

 내가 내뱉은 단어와, 그런 단어로 가득 채워지곤 했던 밤을 추억하곤 한다.

 

 

 "젊은이는 자신의 일을 생각하면 고독해지고 우울해진다."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셔우드 앤더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