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ise on Fire! - Galaxy Express
한국에서 밴드를 한다는 건 어떤 걸까. 나는 가끔 홍대에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한국의 밴드 - 보통은 인디 밴드라는 부정적 뉘앙스로 지칭되는 - 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일본이나 영국 같은 곳에서는 클럽이나 라이브 하우스에 매일 수백명의 관객들이 들어찬다고 한다. 각 지역마다 이런 클럽이나 라이브 하우스가 수십개가 있다. 우리나라는 홍대에만 20개 정도의 라이브 클럽이 집중되어 있고 대전이나 부산에는 한 개, 혹은 두 개의 클럽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엄청난 불균형이다. 때문에 밴드들의 주 수입원인 [투어]가 불가능하다. 가끔 전국의 클럽을 돌아다니며 투어를 시도하는 경우가 있지만, 단순히 [참가에 의의]를 두어야지, 그것으로 밴드 생활을 이어갈 자금을 마련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일본에서는 100명, 500명, 1000명, 2000~3000명 식으로 라이브 하우스가 세분되어 있어 밴드들은 각자 인기에 맞는 곳에서 연주를 한다. 만 명 넘게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도 여럿 있다. 대표적인 곳이 그 유명한 무도관(1만 5천명). 이곳은 일본 음악인의 꿈의 무대다. 미식 축구가 가능한 공연장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는 3만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 요코시마 아레나(1만 7천명), 히로시마 그린 아레나(1만 명) 등 주요 도시마다 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 공연장이 하나 정도는 자리 잡고 있다.
라이브 하우스가 그만큼 많고, 라이브 하우스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관객도 많다는 얘기다. 한국의 경우에는 내한 공연처럼 만 명 단위의 관객을 유치하는 공연은 무조건 올림픽 경기장 - 체조 경기장, 펜싱 경기장 행이다. 전문 공연장이 아니기 때문에 관객을 통제하기도 어렵고 (입장 문제, 대기 문제, 공연 중 안전 문제 등은 고질적이다.) 무대 설치도 힘들고 음향 사정도 나쁘다. 한국에 존재하는 전문적인 대중 공연장 중 천 명 단위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은 [맬론 악스] 단 한 곳 뿐이다. [예술의 전당]은 클래식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경쟁률이 100대 1을 넘어가기 때문에 사정상 공연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애초에 예술의 전당은 클래식 음악인을 위해 만들어졌다.
홍대에 있는 공연장은 소규모 공연장이 - 50명~100명 - 대부분을 차지한다. 쌈지 스페이스라든가, 사운드 홀릭, 스컹크헬, 디지비디 등이 여기에 속한다. 최근에 중대형 공연장 - 250명~300명- 이 약간 늘었는데 KT&G에서 만든 [상상마당]과 신해철씨가 사장으로 있는 [고스트 시어터]가 바로 그것이다. 오래 전부터 있었던 중대형 공연장으로는 [롤링 홀]이 거의 유일하다. 한국에선 중대형 공연들은 체육관을 빌려서 하거나 대학교의 콘서트 홀 - [성균관대 새천년 기념관], [서강대 메리 홀] 등 - 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공연장들은 관객 수입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니라 학생의 등록금이나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전문 공연장은 살아남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그렇게 밝은 미래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더구나 이런 공연장들은 밴드 공연만을 위한 곳이 아니기에 음향이나 무대 시설, 엔지니어의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요요기 공원 같은 곳에 가면 수많은 무명 밴드들이 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일본은 밴드의 숫자가 우리나라보다 몇백배는 더 많다. (과장이 아니다.) 일본 고등학생의 50% 정도는 취미 생활로 밴드를 한다고 할 정도다.(확인된 정보는 아니다.) 일본에선 음악 시장이 메이저와 인디로 나뉘어 있어서 각자 병렬적으로 움직인다. 한국의 경우에는 잘 알고 있겠지만 [음악 시장]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휴대폰 벨소리나 싸이월드 배경음악 시장이 음악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한지 오래다. 한국에서 시디를 팔아서 먹고 사는 건 서태지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마치 작가 중에서 책을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이 소수인 것과 유사하다.
이런 상황이다. 자우림이나 크라잉 넛, 노브레인처럼 학교 축제 한 번 뜨면 1000만원 정도를 받는 밴드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머지는 다 시궁창이다. 일본은 알바만 해서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는 나라다. 시급이 세다. 하지만 한국은 알바만 하면 먹고 살기도 힘들다. 인기 있는 일본 밴드들은 TV에 나오지 않아도 전국의 수많은 클럽들을 돌면서 400에서 500명 정도의 관객 몰이를 하고, 자신의 시디를 팔고, 티셔츠 같은 관련 상품을 팔면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 물론 거기라고 해서 밴드를 해서 다 먹고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밴드 수가 많아서 한국보다 경쟁이 수백배는 치열할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기본 관객 수, 시디 구입자 수, 관련 상품 구입자 수는 한국의 몇 천배는 된다. (과장이 아니다.)
한국에서 밴드만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10명이라면 일본은 1000명이다. 밴드도 하고 알바도 하면서 음악하는 사람이 한국에서 100명이라면 일본은 1만 명이다.
한국에선 최근 몇 년 사이에서야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만이 외로이 지키던 동네에 [펜타포트]가 가세하면서 우후죽순처럼 중소규모 페스티벌 - 을 빙자한 기획 공연 - 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10년 전부터 썸머 소닉 페스티벌, 후지 록 페스티벌, 록 인 재펜 페스티벌이 10만명 단위의 관객을 동원하며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잡았다. 각 지역마다 크고 작은 페스티벌이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이다.
한국의 인디 밴드들은 매일 10명도 안되는 관객 앞에서 돈 한 푼 안 받고 공연을 하기 일쑤다. 요즘에는 인디 밴드들의 시디도 발매되자마자 인터넷에 돈다. 무서운 세상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런 한국에서 갤럭시 익스프레스라는 묘한 이름을 가진 세 명의 남자는 2CD로 구성된 26곡의 앨범 - Noise on Fire - 을 들고 나타났다. 그들은 시끄럽고 괴상하며 미친 것 같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음악은 라이브로 듣지 않고서는 진가를 알 수가 없다. 마지막 곡이라고 해놓고서는, 마치 멈출 듯이 멈출 듯이 30분 넘게 정신 나간 속도로 [존나 빠르고 존나 시끄럽게] 연주하고 마는 이 남자들은 한국의 밴드 중 가장 시끄럽고 가장 간지다.
크라잉넛의 한경록씨가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는 가끔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공연에 나타나 관객들과 함께 슬램을 즐기기도 한다. 7월 5일에 디지비디(DGBD, 드럭)에서 열렸던 앨범 발매 공연에서 깜짝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밴드가 좋아하는 밴드. 라이브를 듣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밴드가 갤럭시 익스프레스다. 그들의 음악은 어딘가 서툴고 정제되지 않은 듯한 느낌을 중시하는 개러지 락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산울림]의 계보를 잇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한국적인 사이키델릭 록을 계승하고 있기도 하다. 그들이 이번 앨범에 수록한 리메이크 곡, 산울림의 [개구쟁이]와 한대수의 [물 좀 주소]를 들어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항상 연주할 때마다 최선을 다 한다. 가끔은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는 자해(?)도 서슴치 않는다. 공연을 끝내고 났을 때 아직도 힘이 남아 있다면 공연을 했다는 느낌이 안 든다는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탈진 로큰롤이라고 부른다. 팬더 곰처럼 다크 서클이 짙은 박종현, 게토밤즈의 베이스였던 이주현, 실신할 듯이 드럼을 두드리다 결국 드럼 스틱과 드럼을 망가뜨리고 만 김희권.
나는 이들의 미래가 궁금하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미래를 알 수 있는 표 한 장을 구입했다. 언젠가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타고 우주로 갈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들이 마지막까지 땀에 흠뻑 젖은 로큰롤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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