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음악

싸구려 커피, 장기하와 얼굴들

나나나나1234 2008. 8. 10. 18:37

 

 

 

  

 

 

 가끔 공연을 보면 기겁을 하게 만드는 밴드가 있다. 노래가 좋아서일 수도 있고, 너무 연주를 못해서일 수도 있고, 술에 꼴아서 무대에 섰기 때문일 수도, 갑자기 바지를 벗고 성기를 노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노래가 그리 좋지도 않은데, 연주는 그럭저럭 하면서도, 바지를 벗지 않았는데 날 기겁하게 했다.

 

  어제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의 마지막 공개 오디션이 있었다. 무려 20여팀이 2곡 씩 연주하는 공연이었는데, 나도 거의 4시간 가까이 봤다. 고고스타처럼 눈이 확 뜨이는 밴드도 있었지만, 대개 고만고만했다. 공연장에는 사람들이 유난히도 많았다. 아무리 에어컨을 세게 틀어도 온도는 30도에 육박했다. 열기와 지겨운 노래에 사람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나도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염을 기른 남자가 밴드와 함께 무대에 올라섰다. 잔뜩 허세를 부리면서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싸구려 커피]. 라이브로 보지 않고서는 결코 진가를 알 수 없는 노래다. 장기하씨(본명인지?)의 유쾌한 음색과 표정, 느릿느릿한 연주자들의 능청스런 연주를 듣다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도대체 이 넋두리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엉터리 랩은 뭐란 말인가. 장기하씨가 [눈뜨고 코베인]의 멤버라는 사실을 알면, 그의 우리말 작사 실력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그 어리둥절한 유머 감각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 있다. 가사를 곱씹을수록 맛이 난다.

 

 게다가 이 80년대스러운 음악은 대체 무엇인가. 김추자의 [커피 한 잔]을 연상하게 한다.

 

 사람들은 무대로 몰려들었고, 그들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아니 그들을 보기 위해서 발돋움을 했다.

 

 "자, 1부 끝 곡으로 들려드렸던 곡은 싸구려 커피였습니다. 이제 2부를 시작하겠습니다."

 

 어차피 2곡 밖에 연주 못하는데. 이 엄청난 허세란!

 

 "자, 섹시한 코러스 걸 미미 시스터즈를 소개하겠습니다."

 

 선글라스를 쓰고 반짝이 의상을 입은 여자 두 명이 무대에 등장했다. 섹시하지는 않다. 웃기기는 한다.

 

 

 

 

 

 지금 이 동영상에 나오는 노래를 부른 건 아니다. [달이 떠오른다, 가자]란 노래를 불렀다. "달이 떠오른다~ 가자!"를 외칠 때마다 우습게 변하는 장기하씨의 얼굴 표정과 미미 시스터즈와 함께 하는 기묘한 안무가 엄청나게 충격적이다. 동영상에는 그들의 아름다운 안무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한번만 보면 모두가 뒤집힐만한 안무다.

 

 이들처럼 정색을 하고 사람들을 웃기려는 밴드는 처음 봤다. 어쩌면 장기하씨는 진심일지도 모른다는 점이 날 웃게 만든다. 그들의 진지함은 표정에서, 연주 모습에서, 노래 가사에서, 기묘한 춤에서 드러난다. 그들이 진지할수록 우리는 폭소를 터트린다. 진지한 사람들은 언제나 재미있다. 어린아이들과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판을 치는 홍대 판에서 이토록 어른스럽게 유머를 던질 수 있는 밴드는 지금껏 한번도 보지 못했다.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라.

 

 

 

http://blog.naver.com/yusil02?Redirect=Log&logNo=10033299004

 

-싸구려 커피를 더 좋은 음질로 들을 수 있는 곳. 가사도 있다.

 

http://blog.naver.com/beatlemom

 

-장기하와 얼굴들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