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의 저자는 가이도 다케루다. 그는 의사인데 이름 말고 다른 신상 명세는 극구 비밀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름도 본명이 아닐 것이다. 내가 그의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8월호 [판타스틱]을 통해서였다. 판타스틱에 그의 단편이 실렸는데, 시라토리라는 괴상한 인물이 등장해서 능청스럽게 추리를 펼치는 모습이 감격적일 정도로 재밌었다. 아니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나, 싶었던 것이다. 시라토리와 왓슨 역할의 다구치가 벌이는 콤비 플레이를 더 보고 싶었다. 그래서 당장 저자의 첫번째 작품인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을 빌려왔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시라토리가 안 나와!
작품의 전반부라고 할 수 있는 200페이지까지 시라토리는 나오지 않는다. 이 바퀴벌레 같고 미꾸라지 같은 인물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소설은 담담한 어조로, 약간은 특이한 인물인 만년 강사 다구치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펼친다. 병원에서 수술 중 의문의 사망 사고가 일어난다. 사망 사고야 흔히 일어나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사고를 일으킨 수술 팀은 승률 50%의 싸움을 100%의 전적으로 완수한 천하무적의 팀이다. 그들이 갑자기 3번의 연속 사망 사고를 일으키고, 다구치는 팔자에도 없는 탐정 역할을 떠맡게 된다. 그러나 다구치가 진실을 파헤치려 노력할수록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고, 또 다시 수술 중 환자가 죽고 마는데...
솔직히 초반부는 좀 재미가 없다. 추리 소설로서 형식을 완벽하게 갖추었고, 탐정을 불러일으키고, 이 탐정이 수사를 하는 과정에 개연성을 부여하느라, 사건의 설명하고 용의자를 나열하는 일에 200페이지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궁금증은 풀리지 않고, 우리는 기다리게 된다. 해결책을. 시라토리를. 자 이제 진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기대하라. 시라토리만 등장하면 우리 모두 뒤집어지게 될 테니까. 시라토리는 공무원임에도 전혀 공무원스럽지 않은 언행과 행동을 거듭한다.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싸가지가 없다. 말도 함부로 하고 젊은 여자를 괴롭히는 비열한 인간이다. 또 왜 그렇게 건방지고 오만한지, 믿는 구석이 있기는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시라토리가 좋다. 독자는 시라토리라는 인물에게 반하고 만다. 이 찌질한 뚱땡이 녀석은 사건의 모든 실마리를 붙잡고 있고, 그것을 '엑티브 페이즈'라는 공격적인 면담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그는 천박해보이는 사내이지만 사실 엄청난 정의감의 소유자이며, 평소에는 전혀 상식을 갖추지 못한 인물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대단히 영리하며 상황 파악을 잘 하는 인물이다. 단지 그는 감정적으로,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인물이다. 시라토리는 놀랍게도 결혼까지 해서 애가 있다. 과연 그런 인간을 남편으로 받아들일 만큼 마음이 넓은 여자는 누구일까. 혹시 천사? 마리아? 역시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다.
이 작품은 추리 소설로서는 그리 가치가 높지 않다. 트릭이랄 것도 아예 없고, 범인은 처음부터 알려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자 후기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의학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고 봐야 옳을 것 같다. 작가의 의도 또한 훌륭한 추리 소설을 쓰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작가의 의도는 사회의 인식 전환에 있다. 의사인 작가는 평소 생활을 통해 일본의 의료 현실에 대해 크나큰 절망감을 느낀 게 분명하다. (사실 조직의 구성원은 대개 그렇다.) 혹사되는 마취 의사나 병원 내 정치 암투를 묘사한 부분에서 이러한 작가의 투정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ai, 즉 사체를 MRI나 CT 촬영을 해서 해부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이, 현재 일본 의료계에서는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이래서는 환자가 왜 죽었는지, 정말 의료 과실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사고였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누가 돈을 물어주느냐의 차원이 아니라, 환자의 생명을 진정으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느냐, 혹시 환자 가족들에게 한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냐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주장하고 있다. 작가는 제3자가 개입할 수 있는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기관을 설립해서 의료사망에 관한 사안을 다루자고 주장한다.
나는 의사인 작가가 바로 이런 이야기 - 의료 현실 비판, 개선책 제시 - 를 하기 위해서 이 소설을 썼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의사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주장을 만인에게 펼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가장 좋은 건 많이 팔리는 소설을 쓴 다음에 거기에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를 쓰는 거다. 작가의 의도는 소설이 아니라 소설에 들어간 의료 현실 비판에 있다. 그런 나머지 추리 소설로서의 본령은 약간 소홀하게 되었지만, 재미만은 확실하게 챙기고 있다. 시라토리가 등장하지 않는 앞부분의 긴장감도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중상 이상은 된다. 단지 뒷부분이 너무 재미있어서 앞부분이 상대적으로 재미없어 보이는 것이지.
이 작가의 다른 소설을 더 읽고 싶다.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