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만났어, 배명훈 외
좋다. 그리고 나쁘다.
먼저 배명훈 먼저 살펴보겠다. 배명훈은 좋다. 아주 좋다. 그는 서구 sf의 충실한 모방을 해냈다. 자신의 색깔은 없지만, 듀나보다는 한 걸음 더 나갔다고 해도 좋다. [누군가를 만났어]에 나오는 고고 심령학에서는 다분히 듀나스러운 느낌이 났지만, 세 발굴팀의 이야기를 직조해나가는 솜씨가 상당했다. 결말도 충격적이었고, 작가가 이야기를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웃집 신화]는 야한 작품이었는데, 지금까지 한국에 소개된 sf가 상당히 금욕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100점 만점에 120점을 주고 싶다. 본래 싸구려 소설이란 이래야 하는 법이다. 그의 감각적인 섹스 묘사는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한 독자들을 한 큐에 쓰러트렸을 것이다. [임대 전투기]도 괜찮았다. 그러나 [철거인 6628]은 다분히 뒷심이 부족했고, [355 서가]는 완전한 속임수였다. 독자를 실망시켰다.
배명훈은 아직 훌륭한 작가는 아니다. 재능있는 작가 지망생인 건 맞지만. 타율이 5할에 불과하다. 8할 정도는 되어야 배명훈을 믿게 될 것이다. 듀나의 경우에는 타율이 8할 5푼이다. 듀나보다 못해서야 말이 안된다.
김보영씨는 문장 연습이나 소설 쓰는 연습을 더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났어]의 작가 세 명 중에서 가장 하드 sf를 쓰는 작가이고, 아마 한국에서 하드 sf를 쓰는 유일한 작가라는 점이 가산점을 줄 만하다. [종의 기원]처럼 느슨한 우화의 경우에는 그녀의 솜씨가 훌륭하게 발휘되었다. [미래로 가는 사람들] 앞의 두 편은 [종의 기원]에 필적할 만했지만, 뒤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다가 [합]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실패작이었다. 이래서야 sf도 아니고 판타지도 아니고, 엉터리다. 마치 아서 클라크 경이 노년에 맛이 가서 쓴 [스페이스 오디세이] 같다. 그는 후속편을 내지 말았어야 했다. 김보영 또한 [승]에서 멈췄어야 한다.
박애진씨는 엉터리다. [선물] 같은 작품은 쓰레기다. 문장도 병신이고 소설 내용은 더 병신이다. [신체의 조합]의 경우에는 예전에 황금룡상 때 게시판에서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하고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데, 아주 좋았다. 그녀의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좋다고 할만하다. [누가 나의 오리 벤쟈민 프랑크프루트를 죽였나]나 [나의 사랑스러웠던 인형 네므] 같은 건 애송이의 글이다. [완전한 결합]은 어슐러 르 귄 냄새가 나는 sf였는데, 약간 난잡했고, 너무 르 귄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박애진씨는 글쓰기 연습을 좀 해야겠다. 글을 너무 못 쓴다. 하지만 [신체의 조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녀에게는 재능의 편린이 있다. 그러나 누구나 재능을 소설로 완성하는 것은 아니다. 정진을 바란다.
작품집 전체를 평가하자면 60점이다. 몇 몇 단편은 정신을 확 깨게 했지만 뒤로 갈수록 실망이 늘었다. 차라리 박애진씨는 빼고 단편집을 구성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배명훈씨나 김보영씨도 작품을 더 다듬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시간이 지나면 위대한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가능성은 있다. 이들의 경우에는 가능성이 더욱 높다. 기대한다.
내게 더 좋은 sf를 보여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