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책/오늘 읽은 판타지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 이치카와 다쿠지

나나나나1234 2008. 12. 16. 12:38

 남자는 수초를 팔며 진부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이제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결혼 정보 회사를 통해 여자를 만나고 있다. 서른 넘어서도 결혼을 못한 남자에게 어느날 유명 여배우가 찾아온다. 남자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상한 만남, 이상한 아르바이트, 어쩐지 남자는 그녀가 익숙하다. 남자는 어릴 적 친구들과의 추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는 가슴이 두근 거릴 일이 없다. 그런 그에게 사랑이 시작되려 한다. 변변치 못한 그 남자에게. 제반 비용을 제하고 나면 초등학생 용돈 정도를 버는 그에게.

 

 이치카와 다쿠지는 유명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원작자다. 따스하고 느슨한 그의 소설을 기억하는 독자에게 이 소설 역시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의 소설 속 남자는 능력이 없다. 경제적인 능력만이 아니라 삶의 전반에 있어서 서툴다. 인간관계에서도 미숙하다. 눈치도 없고 용기도 없는 그는 이상하게도 달리기만을 즐긴다. 달리기는 아주 정직한 운동이다. 달리기는 아무도 속이지 않는다. 경쟁은 오로지 자신하고만 한다.

 

 그는 착한 남자다.

 

 이치카와 다쿠지의 소설에는 따스한 패배감이 깃들어 있다. 그의 소설에서 성공하는 건 언제나 다른 사람이다. 나에게는 대단한 돈을 벌 기회도 없고,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을 일도 없다. 나는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도 못하고, 좋은 대학을 나오지도 못했다. 머리가 좋지도 못하고 집에 돈이 많지도 않다. 그럼에도 나는 사랑하고 있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만은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사랑 받을만한 자격이 있고, 타인을 사랑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는 초중반의 세밀한 일상묘사와 추리적 기법을 배신하듯이 엉뚱한 결말로 치닫는다. 환상적인 결말은 전체적인 소설의 균형을 해치고 있다. 한마디로 뜬금없다. 그럼에도 그의 소설이 읽을 만한 것은 소설에서 작가 자신이 얼마나 따스한 인간인지가 느껴지 때문일 것이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라는 느낌이 든다. 그의 소설은 밤을 새워 읽을 만한 긴장도 주지 않고, 다 읽고 나서 통쾌하고 후련한 쾌감을 주지도 않는다. 주인공들은 느긋하고 갈등은 너무나 선량하게 해결된다. 그들 모두가 현실에서는 바보로 취급될 사람들이다. 일본의 20대 남자들 중 80%가 아는 여배우이면서도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프리터가 된 여자, 3개국어에 능통하고 일류 대학을 나왔으며 아시아 지역 총괄 매니저였으면서도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남자. 이들의 모습은 사랑만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애정 지상주의자로서의 작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그저 달리기를 잘하는 것만이 유일한 자랑인 남자가 작은 사랑을 지켜간다.

 

"사랑만 할 수 있으면 아무래도 좋아."라기보다는 "사랑을 할 수 있기에 어떻게 되어도 좋아."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패배주의는 절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희망을 위한 것이다. 앞으로 모든 일이 잘 될 것이고, 지금 힘들더라도 삶은 여전히 사랑으로 견뎌낼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이 순진한 작가의 안이한 소설이야말로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