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뭔가 이상한데, 내가 어렸을 때 생각했던 세상은 이런 게 아니야.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25살이라는 것. 대한민국이라는 것. 사회라는 것. 남자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 세상이라는 것. 우주라는 것. 인터넷이라는 것. 그 모든 것이 내가 어렸을 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고. 어렸을 때라고 해봐야 뭐 그리 오래전도 아니다. 기껏해야 7년? 8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때는 우리나라는 좀 더 민주적인 나라라고 생각했다. 민주적이라는 게 정확하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고 해서 처벌받거나 그 의견을 말할 자유를 침해받지 않는 나라, 그것이 민주적인 나라가 아닐까. 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할 것 같다. 그런데 인터넷만 봐도 이러한 원칙은 지켜지질 않고 있다.
이글루스에서는 보수적인 의견을 가진 정신병자들이 공격받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티안무나 타이슨, 진리 경찰 같은 자들이다. 이들은 촛불 시위자를 까면서 말도 안되는 논리를 내세워서 인신공격을 퍼붓는다. 사람들은 이들의 의견이 마치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군다. 그리고 똑같이 그들에게 갚아준다. 이런 행동은 두가지 측면에서 문제인데, 하나는 앞에서 말한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막는다는 것과 악행을 악행으로 갚는다는 본질적인 모순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혹은 알면서도 간과하곤 한다. 얼마전에 산왕이란 블로거가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신고를 당했다. 불순한 사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훈방되기는 했지만, 이 사건 때문에 한동안 이글루스가 시끄러웠다. 80년대가 돌아왔다느니하는 말이 많았다.
그렇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은 살아있다. 단지 '불순한 사상'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생각만으로 처벌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우리나라 법이 그렇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 산왕이란 블로거가 경찰에 신고당한 것과 티안무나 타이슨 같은 정신나간 보수(?) 블로거가 공격받는 것이 같은 맥락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상에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설령 그 사상이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사상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모순 같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유를 침해하는 '행동'을 막아야지, 자유를 침해하는 '사상'은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행동'과 '사상'은 별개다. '사상'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자면 "부자 새끼들은 다 죽어야 해!"라고 누군가가 말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사람이 범죄자일까? 혹은 그 사람이 정말로 나중에 부자들을 살해하게 될까? 물론 그렇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자들을 살해한 후에 그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 결코 그 사람이 '부자새끼들은 다 죽어야 해!'라고 발언한 순간에 처벌할 수는 없다. 어쩌면 혹자는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그런 과격한 발언을 한 걸 보니까, 그 사람은 위험한 인물이라고, 아무래도 나중에 부자를 죽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지금 예방차원에서라도 그런 발언을 하는 인물들에 대해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일견 타당성이 높은 의견이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지?)
그렇다면 "부자 새끼들은 다 죽어야 해!"에 국가보안법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부자라면 자본가다. 자본가는 공산주의의 적이다. 자본가를 죽여야한다고 주장하는 걸 보니 이 녀석은 공산주의에 찬동하는 녀석이군. 공산주의에 찬동하는 녀석들은 국가 체제를 위협하는 자들이야. 자, 이 녀석들을 처벌하자구! 물론 이렇게 조악한 논리는 아니다. 국가보안법이란 게. 하지만 최근에 일어난 사노련 사건을 보자. 노인네들 몇이 모여서 불순한 사상을 담은 글 좀 몇 개 썼다는 이유로, '이적단체를 구성해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하고 안보에 위해를 끼치는 문건을 제작·반포'한' 혐의를 적용해 조사했다. 불구속되긴 했지만 과거였다면 징역을 먹었을 건수다. 좀 더 세밀하고 교묘하다 뿐이지 본질적으론 같은 얘기다.
난 니 생각이 마음에 안 들어. 니 생각은 위험해. 니 생각은 우리한테 안 맞아. 안되겠어, 이리 와 본때를 보여주마.
결국 이거다.
국가보안법에 내재한 논리와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정신이 좀 덜 떨어진 보수(?) 블로거를 공격하는 논리는 완전히 동일하다. 여기서 그 주체가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지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나도 티안무나 타이슨이 하는 주장 - 촛불 좀비 운운하고 빨갱이 운운하는 얘기 - 을 미친 소리라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사회주의를 탐구하고 공산주의를 연구하는 건 다분히 학문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상의 자유는 그 사상의 우열에 따라 차별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아무리 위대하고 숭고한 의견이라도 가장 천박하고 유치한 의견과 동등한 수준으로 자유를 보장받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사상의 우열을 판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잣대가 없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자본주의보다 우월한가? 신자유주의가 생태주의보다 우월한가? 노무현빠가 이명박빠보다 우월한가? 니체가 마르크스보다 우월한가? 파시즘이 휴머니즘보다 우월한가? 물론 파시즘은 휴머니즘보다 대부분의 경우 우월하다. 하지만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는 파시즘이 휴머니즘보다 단연 우월했고, 그보다 우월한 것은 민족주의였다. 잣대란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개인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은 없다. 21세기에 19세기 같은 소리 - 객관적이니 절대적이니 - 좀 하지 마라.
웃기지도 않으니까. 촌스러우니까.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세상에는 이런 웃기는 사람들, 촌스러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국가에도 많고 시민 중에도 많다. 촛불을 든 사람 중에도 많고, 물대포를 쏘는 사람 중에도 많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어떠한 의견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보 같은 새끼들이 너무나 많다. 행동은 제약받아야 하지만, 사고와 의견 개진은 허용되어야 한다. 절대적인 잣대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상의 자유를 허용할 수밖에 없다. '좋은' 사상만 허용하고 '나쁜' 사상만 금지할 수는 없다. 무조건 '모든 사상'의 자유여야만 한다. 예수는 개새끼라고? 좋다. 그렇게 말하는 건 네 자유다. 하지만 교회에 불지르는 건 안돼. 된장녀들은 다 겁탈해야 한다고? 좋아.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네 자유지. 하지만 숙녀분들 앞에서 발언을 할 때는 좀 더 조심하도록. 이런 식이다.
이런 게 내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이 그런 종류의 민주주의 사회에 지금보다는 더 가까운 나라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요즘 세상은 내가 어렸을 때 생각하던 그런 세상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