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오츠 이치
이제는 한국에도 어느 정도 팬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는 오츠 이치. 그는 17세에 단편소설로 제 6회 점프 소설 대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바로 그 단편이 이 책에 실려 있는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라는 작품이다. 제목에서부터 범접하기 힘든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아이를 죽이고 사체 유기를 하는 남매를 그려내고 있다. 오츠 이치의 잔인하면서도 서정적인 작풍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스타일이 이미 데뷔작에서부터 거의 완성되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17살 때.
문장이 평이하다기보다는 단정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묘사를 자제했다기보다는 군더더기를 빼고, 할 말만 깔끔하게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대개 라이트 노벨로 분류되는 작품들은 중학생도 읽을 수 있는 문장을 구사한다고 한다. 많은 경우 이런 문장들은 '귀여니'로 대표되는 외계어를 연상하게 한다. 오츠 이치의 문장도 그런 것일까. 원문을 확인할 실력은 안되지만, 아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기에는 그의 연출력이 너무나도 탁월하다.
문장과 연출력의 상관관계는 말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다. 시체를 숨기려는 어린 남매에게 끊임없이 탄로가 될 위기 순간을 부여하고,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는 모습을 태연하게 서술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과연 이 작품이 10대가 쓸 수 있는지 의심이 들기까지 한다. 마치 잘 짜여진 헐리웃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이런 감각은 아마도 타고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로 쓸 수 있는 작가라면 분명히 문장력도 탄탄할 게 분명하다. 번역된 문장도 술술 읽히는 것이 딱히 뭔가를 넣고 뺄 것이 없어 보인다.
사람에 따라서는 건조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화적인 소설'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등장인물들의 동선이 뚜렷하고, 상황 설명도 눈 앞에 선명하게 떠오를 정도로 시각적이다. 이대로라면 영화로 만들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오츠 이치의 작품 다수가 일본에서 영화화되었다고 한다. 오츠 이치 자신도 영상에 관련된 작업을 하는 것 같은데, 정확한 사정은 잘 모르겠다.
오츠 이치는 추리소설적인 구조를 작품에서 세련되게 구축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범인이 있고, 범인을 알려주는 숨겨진 단서가 존재하고, 작품 말미에서 범인이 밝혀진다. 마치 퍼즐을 풀어나가는 듯한 이런 구조는 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잘 썼고, 커가면서 작풍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니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암흑동화]나 [고스-리스트컷 사건]같은 작품에서 보이는 잔인성은 훨씬 덜하기에 심약한 사람도 읽기가 쉽다. 뭐, 어린 아이들이 사체유기를 한다는 얘기가 잔인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 책에는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만이 아니라 [유코]라는 단편도 실려 있다. 표제작에 비해서는 약간 떨어지는 작품이고 재미도 덜하다. 그러나 전형적인 오츠 이치풍의 단편인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