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르 문학은 라이트 노벨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크로이츠씨가 말한대로 라이트 노벨이란 용어가 일본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용어라고 한다면, 즉 일정한 문학 작품군이 형성되었을 때 이를 편의적으로
부르기 위해서 발생했다면, 한국에서 쓰이고 있는 [장르 문학]이란 단어 또한
비슷한 발전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 들어 퇴마록을 시작으로 드래곤
라자, 그 놈은 멋있었다로 이어지는 대중적인 성공과 홈즈 전집, 다빈치 코드,
sf의 이상 출판 증가 현상,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의 성공으로 촉발된 라이트
노벨 시장 전쟁, 일본 문학상 수상작 묻지마 수입 러시, 3대 일간지의 대중 소설을
향한 러브콜 같은 국지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결과를 보면 한국에서도 "쉽게
읽을 수 있고 가볍게 살 수 있는 책"을 소비하고자 하는 계층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한국의 경제 수준이나 문화 산업의 복잡성 등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
갔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단지 우연일 수도 있다. 세계적인 추세라는 얘기도 있고
아마 그게 맞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러한 경향이 현재에 와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으로 현실화되었다. 이전부터 인터넷 논자들에게서 회자되던
[장르 문학]이란 말이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흔히 [장르 문학]은 sf, 추리,
판타지, 호러, 로맨스로 대표되는 비주류 문학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들의
활발한 교잡이 이루어지고 있다기보다는 애초에 각 장르가 오롯이 존재한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에, 팔리는 작품과 안 팔리는 작품으로 나누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현실을 적절히 반영한다. 이영도로 대표되고 실제로는 가즈나이트,
이드로 널리 알려진 판타지란 장르는 비뢰도나 묵향 같은 베스트셀러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한국 대중 문학 시장을 한 때 완전히 장악했던 무협과 뼈대가
다르지 않다. 그리고 무협이란 장르 또한 김용의 무분별한 추종에 불과했다는
회고가 주를 이루고 있다. 결국 이들이 장르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 있었다기
보다는 그저 팬픽에 가까운 모방품을 양산했고, 이는 [장르 문학]이라고 부를만한
작품군의 최저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장르 문학]은
고급스러운 것, 시크한 것으로 착각되기 쉬운데 사실 번역서로 외국 소설을
접하고 후에 원서로 나아간 일부 독자들에게만 그러한 것이지, 대부분의 독자에게는
일제 시대에 팔던 딱지본 소설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무엇보다도 독자층은
존재하지만 창작자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 고급스런 대중 문학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허상에 불과하다. 단지 외국의 문학을 수입하는 장사꾼들과
그런 장사꾼이 되고 싶어하거나 이미 된 허영심 많은 독자가 있을 뿐이다.
즉 내가 정의하는 장르 문학이란 대여점 시장을 형성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수많은
쓰레기들 - 펄프 픽션을 가르킨다. 이들이야말로 바로 장르 문학, 지금 인터넷에
범람하고 있는 라이트 노벨이란 명칭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군인 것이다. 쉽게
쓰고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도 라이트 노벨은 존재했다는 얘기가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 문학이 읽히지 않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작가가 어깨에
힘을 주고 글을 쓰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것을 토속적이거나 민족적인 것, 심지어는
이념적인 것과 착각한 작가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한국의 분단 현실을 문학적인
소재가 아니라 주제로 채택함으로써 일어난 오류인데 그로 인한 비극과 희극은
충분히 문학적이나, 분단이나 이념, 혁명 같은 것이 소설을 잠식하기 시작하면
작가고 소설이고 개차반이 되고 만다. 이건 카프 문학의 좆같음을 실감한 일제
시대 문학 청년들도 잘 알고 있었던 바다. 아무튼 문단이란 대학물 먹은 녀석들의
조합이고 당시 대학물 먹은 녀석들은 하나 같이 제대로 된 것들이 아니었기에
글을 써도 같잖은 짓을 했다. 물론 당시 소설이란 것을 읽을 정도로 정신이 나갔던
계층 또한 마찬가지다.
21세기 한국의 혁명이란 바로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심지어는 출판할 수 있다는
모습으로 증명되고 실현되었다. 더이상 진지한 글쓰기가 재미없는 글쓰기와
혼동되는 일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작가의 배경을 작가의 작품과 동일시하는
고전적인 해석법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고인 물은 썩어들어가고
있으니 예전의 단물을 어떻게든 빨아먹으려는 바보들은 남아있다. 마치 민족,
한국적이란 명제가 전가의 보도라도 되는 양 받들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내가 보기에 강단에서 배우게 되는 한국 문학의 실체란 어떻게든 한국의 문학의
뼈대라도 세워보려고 삽질을 했던 문학 청년들의 뻘짓이 낳은 기형적인 결과물이다.
물론 그들로서는 방법이 그것 밖에 없었으니 외국의 문학이론과 장르 구분, 스타일
정의로 먹고 살았겠지만 그것이 상당히 요령 부득의 짓거리임은 자신들이 더욱
잘 알았을 것이다. 때문에 지금 일본의 소설을 수입해서 팔아먹는 자들이나 문학이론
이라고 해서 sf는 어떻고 라이트 노벨은 어떻고 라고 씨부리는 녀석들이야말로
몇십년전 곧 죽어도 책은 읽고 죽는 우리 선배님들의 적자라고 할 수 있다. 꼭 필요하지만
꼭 없어져 줘야 하는 자들이다.
귀찮으니까 결론이나 내보자면 1. 한국에도 이미 라이트 노벨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다.
2. 대여점 가보면 널려 있다.
3. 그거 갖고 어떻게 해보자.
4. 시드 노벨이 그렇게 하고 있더라.
5. 얼씨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