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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무너지고

 평소에는 별 관심도 없던 숭례문이 무너지고 나자 갑자기 다들 울고 불고

난리다. 방송부터 인터넷까지 설레발이 한도 끝도 없고 예언에 운하에 당선자에

음모론에 노인네와 증오 범죄 같은 흥미로운 떡밥들이 쉼없이 쏟아지고

있다. 갑작스런 한파에 어울리는 엄청난 화재와 설날로 지루해진 심신을

적절하게 자극하는 스캔들. 이런 재미 없으면 생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이겠나. 만인에게 만인을 위한 화제를 던져주는 일이다.

 

 이미 양익이 잘려나가 몸통만 남아 있는 숭례문은 민족의 잘려나간 정기의

상징이었다. 그런 상징이 이제 일제 시대에 태어나 자란 자의 손에 의해

한 줌 잿더미로 소진되었으니 오호 통재라, 하늘이 울고 땅이 울고 조선

강토의 육천만 동포가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구나. 라는 건 페이크고

어쨌든 방송이 잊힌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운하 문제로 연결되는 것은, 진정 우스운 일이다. 어떻게든

사욕을 채우려는 자들의 검은 마음은 끝이 없다.

 

 미국이 지난 십년간 부시를 까는 재미로 살아왔듯이 이제 우리 나라도 대통령

까는 재미로 또 5년을 보내게 되었다. 이 재미로 맛들이는 건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 심리일 것이다. 모두 화염병을 던지고 스크럼을 짜는 자들의

모습을 구경만 하지 않았던가. 영웅들은 술 취해서 위정자의 욕을 하다가

몰래 자전거를 타고 지서로 신고하려는 이장 놈을 이단 옆차기로 날려

버리곤 하였다. 술이 채 식기도 전에. 멋모르고 인쇄소를 들락거리는 학생들의

삐라를 떨리는 손으로 갈무리하던 시절과 전태일을 연호하며 노동 기본법에

시대의 사명을 걸던 시절을 거쳐 마침내 권력의 향방이 바뀌자 모두 타락했고

불타버렸고 마침내는 숭례문처럼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다.

 

 꿈이 사라지고 이상과 현실은 단지 단어에 불과해져 버린 이 시대에 사람들은

사라지고 나서야 그 진정한 의미를 갖는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 찾게 되었다.

그것은 보물. 손아귀에서 스러져간 후에야 깨닫게 된 것이 있으니 사람들은

모두의 보물을 디카로 찍고 구경하고 인터넷에 올리고 통탄하고 방문을 붙이고

비난하고 화를 내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것은 단지 핑계일 뿐이고 계기일 뿐이며

구실일 뿐이다. 이제 시작되었으니 모든 것이 허물의 근본이 될 것이요, 비극의

단초가 될 것이다.

 

 숭례문이여. 숭례문이여.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