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나도 말을 하다가 괜히 악을 쓰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을 싫어한다. 사실 나는 말을 하다가 흥분을 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많은 편이다. 가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상대가 목소리를 높이면 그걸 제지하면서 뭐라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 나는 의식적으로 목소리의 톤을 낮추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이 하이톤으로 말을 하는 걸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음악을 들을 때는 다르다. 보컬의 창법은 악을 쓸수록 비명에 가까울수록 좋아한다.
내가 인디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들은 대개 악을 쓴다. 인디를 하는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열정으로 가득찬 남자들이 많다. 여자 보컬들이 악을 쓰는 건 맛도 없을 뿐더러, 비명처럼 들려서 싫다. 나는 여자들이 공연장에서 지르는 비명 소리도 무척 싫어한다. 비명 소리 하니까 생각나는데, 몇 년 전 프린지 페스티벌 때 스컹크 헬에서 썩스터프가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프린지 페스티벌이다 보니까 클럽 자주 안 오는 여자애들이 좀 있었다. 걔네들은 싸늘한 클럽 분위기 - 사람이 별로 없었다. - 속에서도 나름대로 신나게 놀기 위해서인지 마치 방청객처럼 소리를 높였다. 그 왜 있지 않은가. 막 귀신처럼 우오오~ 꺄아아~ 하는 버라이어티 방청객 같은 소리. 여중고생들이 음악 프로 방청을 할 때나 나오는 소리 말이다.
그때 그 소리를 계속 질러대자, 유철환씨가 대놓고 "야 그만해. 시끄러워."라고 말해버렸다. 그러자 여자애들은 뚝. 곡이 끝나자마자 우르르 나가버렸다. 나는 여자가 비명을 지르는 것만이 아니라 남자가 비명을 지르는 것도 싫어한다. 갤럭시 익스프레스 공연을 보다가 남자들이 우호호~ 하는 높은 소리로 게이처럼 소리를 지르는 게 싫어서,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짜배기 절규를 내뱉은 적이 있다. 새벽에 술 먹고 미친 놈들이 지르는 소리를 연상하면 적확하다. 내가 한 짓이지만, 정말 해선 안 되는 짓인 것 같다.
하지만 보컬의 경우에는 다르다. 이건 노래니까. 그들이 절규를 할수록 피를 짜내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삼보마스터를 좋아하게 된 것도 그래서다. 삼보마스터의 보컬은 울 것처럼 노래를 부른다. 진짜다. 뚱뚱한 안경 쓴 돼지가 혈관이 다 터져나가도록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른다. 가슴이 뛴다. 갤럭시 익스프레스도 그렇다. 그들은 자신의 머리를 때리면서 소리를 지른다. 남자가 지르는 소리란 여자와는 다르게 애절하다. 여자가 소리 지르면 짜증나 죽겠다. 그러나 허클베리핀의 이소영씨의 지르는 보컬은 또 좋아한다. 이소영씨는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중성적인 소리를 지른다. 자우림의 김윤아씨는 목소리가 좋기는 하지만, 그녀가 내지르는 소리는 정말, 정말이지 여중고생들의 환호를 연상하게 해서 싫다. 여자애들 소리 지르는 건, 지겹게 반복하지만서도, 정말 밥 맛이다. 공연 가서 소리 좀 지르지 마라. (물론 그것도 없으면 재미 없지. 어차피 내가 지르지 말라고 한들 안 지를 것도 아니고.)
메이저 애들은 노래 할 때 소리 같은 거 안 지른다. 그렇다고 그들이 열정이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YUI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관객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진심을, 여자아이의 찡그리는 얼굴, 높은 음에서 어설프게 내지르는 목소리를 통해 감지한다. 열정이 있으면 그 열정을 어떤 방식으로 표출할 것인지 계산해야 한다. 인디 애들은, 또 진짜 유명한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태생적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소몰이 창법 애들은 결코 모르는 걸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인디를 듣는다. 나는 그래서 밴드 음악을 듣는다.
그렇다고 여자 보컬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난 chatmonchy, 숄티캣, noodles처럼 여자로만 구성된 밴드 음악도 듣는다. 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꾸며내지 않고, 가장되지 않은 소리를 낼 때, 오빠를 연호하기 위해서 내는 병신 같은 소리가 아니라, 전화를 받을 때 내는 대외용 목소리가 아니라, 진정 그녀의 본원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
나는 그의, 또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진심을 느낀다. 그 목소리를 사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