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그 많던 장르 문학상은 누가 다 먹었을까.

 한 때 한국에도 장르 문학상이란 게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황금가지의 [황금  드래곤 문학상],(이하 황금용 상.) 북하우스의 [세발 까마귀 문학상], 한국 과학 문화재단의 [과학기술 창작문예], 상 이름에 [인터넷]이 빠지지 않았던 기타 여러 잡스러운 상들.

 

 그 많던 상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상금은 대체 누가 다 먹었을까. 황금용 상의 경우 1회 상금이 무려 3000만원이었다. 총 상금이 아니라 대상에게 주어진 상금이 그랬다. 그런데 과연 1회 대상작인 [영혼의 물고기]는 3000만원을 벌어들였는가.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10212MW11083159119

 

 [영혼의 물고기]는 온라인 서점에서 모두 품절 상태다. 아무래도 절판되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영혼의 물고기]는 몇 쇄나 찍었을까. 3000만원을 벌려면 최소한 4~5쇄는 찍어야 한다. 권수로는 만 권에서 만 오천권 정도. 과연 [영혼의 물고기]는 얼마나 팔렸는가. 몇 쇄나 찍었는가. 궁금하다. 하지만 애초에 돈을 황금가지에서 다 댄 것도 아니고, 어차피 처음에는 작가를 육성하고 발굴하자는 좋은 취지가 있었다.

 

 작가인 김유정씨는 기사에서는 전업 작가로의 꿈을 내비쳤지만, 실제로는 수상 이후로 공식적인 출판을 한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그녀의 후속작은 무엇인가. [그라나다 에스파다]와 [마비노기]의 팬픽을 썼으며 코믹에도 참가한 건 알고 있다.

 

 황금용 상의 경우 2회는 대상 없이 가작만 2편이었다. [달의 노래], [열번째 세계]. 어찌된 일인지 심사평에는 있던 [달의 노래]는 출판되지 못했고, 김주영씨의 [열번째 세계]는 출판되긴 했으나 역시 그냥 묻혀버렸다. 김주영씨는 최근에 [이카, 루즈]라는 작품을 출판하는 등 지속적인 창작을 하고 있다. 3회 때는 김종일씨의 [몸]이 대상으로 뽑혔다. 김종일씨는 올해 [손톱]을 출간했고, 그의 모든 출간 작품이 영화화 계약이 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황금용 상은 3회 때 대상 상금이 천만원으로 줄어들고, 스폰서를 잡기 힘들다는 얘기가 돌 정도로 삐걱거렸다. 관계자는 문학상에 응모하는 예비 작가들의 수준이 너무 낮다고 했다. 판타지만 받아서는 안되겠는지 응모 가능 분야를 모든 장르로 확장했고, 결국 호러 쪽에서 3회 대상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물론 3회를 끝으로 황금용 상은 사라졌지만 말이다. 최근에 다시 황금용 상이 열린다는 얘기가 있지만, 이전과 같은 큰 상금은 없다고 한다. 좋았던 옛 시절은 이제 다 지나간 것이다.
  

 

 세발 까마귀 문학상의 경우 [샴발라 전기], [고리골], [리무], [패러노말 마스터] 같은 수상작을 내고 5회로 종결되었다. 3, 4회 때는 그나마 우수상이라도 줬지만, 5회 때는 수상작을 전혀 내지 못했다. 수상작들 중에서 내가 읽어본 건 하나도 없다. 배너 광고는 많이 떴지만 읽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역시 몇 권이나 팔렸는지 의문이다. 

 

 [샴발라 전기]의 임정씨는 수상 이후로 [디지털 판타지 문학상]을 수상하고 최근에는 홍정훈씨가 사장으로 있는 넥스 비전에서 [빵과 장미]라는 책을 냈다. [고리골]의 조선희씨는 [아돈의 열쇠], [타토에서 오다]를 쓰며 현재까지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리무]의 정해리씨는 감감 무소식이다. [패러노말 마스터]의 이수현씨는 활발한 번역 활동 중에 있다.

 

 세발 까마귀 문학상은 황금가지처럼 3000만원 대상 상금을 내걸며 야심차게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수상작을 하나도 내지 못하더니 없어졌다. 수상작들도 화제가 되지 못했고 별로 팔리지도 못한 것 같다. 그러니까 상이 없어졌지. 게다가 응모작들의 수준도 별로였다. 그러니까 수상작을 못 냈지.

 

 

 자, 여기서 중간 정리.
 
  두 판타지 문학상의 문제점은 거의 동일하다. 수준 낮은 수상작, 끈기 없고 능력 없는 문학상 주최측.

 

 상금이 높은 건 문제가 될 것 같기도 하지만, 뺐다. 상금이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그만큼의 상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던 주최측이 문제다. 북하우스와 황금가지는 자체적으로 상금을 조달하지 못하고, 또한 안정적인 스폰서를 확보하지 못하면서도 무턱대고 몇 천 만원 단위로 문학상을 시작했다.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떡밥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응모작, 수상작들은 수준이 낮았고, 주최측은 점점 당황하는 면모를 보이다가 결국 문학상 자체를 중단하고 말았다.

 

 세계일보의 경우 1억을 내걸고 벌써 4회까지 문학상을 진행했다. 1회 수상작인 [미실]과 2회 수상작 [아내가 결혼했다]가 10만부 이상 팔렸고, 3회 수상작인 [슬롯]에서 약간 주춤하다가, 4회 수상작인 [스타일]에서 드디어 대박을 쳤다.

 

 1회 수상자인 김별아씨는 신인이 아니었다. 이미 순수 문학계에서는 차세대 기수로 지목되던 작가다. 그런데도 세계문학상은 김별아를 선택했고, 1억이란 상금이 만든 [진짜 떡밥]과 함께 판매 부수를 보장했다. 황금용 문학상 1회 수상자는 매우 낯선 인물이었다. 그는 심지어 통신이나 인터넷에서조차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글은 연습장에 썼다고 한다. 독자가 모르는 인물이었다. 작품의 수준을 보고 평가했다지만, 그 평가는 안타깝게도 잘못된 것이었다. 독자는 수상작을 읽지 않았다. (심사평은 다들 많이 본 것 같다. 장담하는데 수상작 판매 부수보다 심사평 조회수가 더 높을 것이다.)

 

 한국에 문학상이 몇 개인가. 적어도 300개 이상은 된다. 그 중에서 1000만원 이상을 상금으로 내건 문학상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동서 커피 문학상의 상금이 총 5800만원이다. 상금으론 관심을 받기가 어렵다. 세계 일보처럼 아예 1억을 딱 한 명한테 주지 않는 이상 말이다. 황금용 문학상과 세발 까마귀 상은 상금을 어정쩡할 정도로 높게 책정했고, 그 결과 별볼일 없는 판매부수로 보답 받았다. 수상자들은 다들 자의반 타의반 먹튀였다. (독자가 바보라는 얘기는, 장르 문학을 쓰는 사람이, 상업 소설을 쓰는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도 어리석은 주장이다.)

 

 사실 황금용 상이나 세발 까마귀 문학상의 매력이나 공신력 같은 게 어디 있겠나. 그냥 상금이 3000만원이나 되니까 다들 관심을 가졌지. 그랬는데 상금을 내리자 이젠 아예 관심도 없어졌다. 응모자들의 수준이 낮다고? 그건 자초한 거다. 1억을 내걸어봐라. 그럼 진짜 실력있는 기성 작가가 돈 벌겠다고 달려든다. 왜냐하면 그들도 배가 고프니까.


 

 자, 최근의 경향을 살펴보자. 2004년에 [과학 기술 창작 문예]란 것이 생겼다. 과기부로부터 예산을 어떻게 따냈는지는 몰라도 중편 상금이 1500이었고 단편 상금이 700이었다. 이 상은 소위 sf라고 불리는 작품군을 뽑는 것이었는데, 만화나 시나리오, 논픽션 부문까지 있었다. 1회 수상자는 단편에 박성환씨, 중편에 김보영씨였다. 읽어봤는데, 단편이나 중편이나 수준에 있어서는 딱히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상금이 단지 분량에 따라 두배 넘게 차이나는 것이 좀 아이러니하다. 2회 때는 단편에 배명훈씨, 중편에 김창규씨였다. 배명훈씨는 [발굴]이라는 말이 적절한 작가였음이 판명되었고, 김창규씨 또한 결코 무시못할 필력을 증명했다. 이들은 최근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2회까지 주요 상을 받은 사람들 중 sf 팬덤이란 좁은 동네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 여럿 있었다는 점이다. 3회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어째서인지 화제성이 덜했다. 아직 작품집을 읽어 보지 않아 수준은 말할 수 없다,)

 

 이 상은 1회와 3회 때 만화 부문에서 각기 기성 작가의 대리 시나리오, 표절 의혹으로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최된 문학상 중 숨은 작가의 발굴과 육성이라는 대의 명분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천한 상이 아닌가 한다. 상금도 적당했고 수상자들을 위해서 호텔에 자리를 마련해 연회 형식으로 시상식을 하는 등 아주 모범적이었다. (물론 수상자들만을 위해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황금 용상이 장편을 제외하고는 수상작의 작품집을 내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데 비해, 꾸준히 작품집 발간을 했던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한 부분이다. 작가에게는 상금도 중요하지만 공식적인 지면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정부에서 공모전을 실시할 경우, 전범으로 삼을 만한 상이었다. 

 

 예산을 못 땄는지 3회를 끝으로 [과학 기술 창작 문예]는 사라졌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수상 작품집이 홀대 받은 것이 아닐까 한다. 구체적인 속사정이야 나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문학상인데도 불구하고 장편 없이 중, 단편만 뽑는 것이 특이한데, 이것은 한국의 sf 창작 환경이 그만큼 척박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통신 환경을 타고 활발해진 장르라서 단편 분야만 많이 창작되는데다, 사실 복거일씨 말고 한국에서 현재 sf 장편을 쓸 실력이 되는 사람이 1명이라도 있는지 의문이다. 설령 쓴다 한들 그게 읽을 만 할 것인가. 궁금하다. 누군가 나서서 써주길. (듀나가 예전에 이매진이란 웹진에 [몰록]이란 장편인지 중편인지를 연재하다 슬그머니 접었다,)


 

 이상의 실험으로 볼 때, 그리고 그외의 잡다한 실험들이 모조리 실패로 돌아간 것을 보면 매년 상당한 상금을 걸고 개최되는 문학상은 지속이 어렵다는 점이 경험적으로 증명되었다. 최근에는 학산 문화사나 시드 노벨에서 상시적인 문학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문학상 제도를 따라한 것으로 보인다. 출판사에서 적은 상금을 걸고 공모전을 여는 대신 수상한 작가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파우스트 쪽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시드 노벨 측에서는 이러한 모델을 매우 열성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http://snovel.egloos.com/4298553

 

 작품을 수상한 작가만이 아니라 아깝게 떨어진 작가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다. 링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마치 일본의 만화 출판사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담당 기자를 붙여 주고 예비 작가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매우 선진적인 방식이다. 미국의 펄프 잡지 황금 시대에도 캠벨이란 편집자가 이런 방식으로 아시모프나 하인라인을 키워냈다. 물론 시드 노벨의 작품들은 인터넷에서는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공모전을 지속할 경우 그 결과는 진정 신만이 알 것이다.

 

 자, 이게 장르 문학상의 미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장르 문학계의 작가 수준이란 무척 낮다. 순수 문학계가 책이 안 팔린다고 하지만 장르 문학계는 그럼 잘 팔리는가. 개찐도찐이다. 적어도 순수 문학계는 필력이라도 있다. 때문에 마케팅만 잘하면 팔릴 가능성이 있다. 1억을 내걸면 1억을 타갈만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하지만 장르 문학계는 1억을 내걸면, 과연 누가 타갈까. 판타지나 sf에 애정을 가진 사람, 진짜 팬에서 시작해서 작가를 꿈꾸는 사람, 장르 커뮤니티에서 커 온 사람은 아닐 가능성이 많다.

 

 이건 우리쪽 사람 아니면 안 된다는 폐쇄적인 생각이 아니다. 분명히 장르 문학계는 팬이 아니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 있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어렸을 때부터 이 싸구려 소설들에 열광해온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뒤엉키며 읽고 써 온 사람들이 아니면 안된다. 이영도가 그랬고, 홍정훈이 그랬고, 전민희가 그랬고, 이우혁이 그랬고, 이상균이 그랬듯이 말이다.

 

 그런 영역이 분명히 있다.

 

 그런 영역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기 위해서는 상시적인 문학상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엄청나게 품이 많이 드는 일이긴 하지만 시드 노벨의 담당 기자 제도를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동인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미러 웹진의 [합평회] 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합평회 제도는 독자 합평회의 경우 구성원이 일정하지 않아서 지속적인 조언이 불가능하다. 조언자는 자신의 조언이 잘 먹히는지, 또 조언을 받는 사람은 정말 그 조언이 효과적이었는지 확신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인터넷이란 이럴 때는 무척 무력하다.

 

 돈이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비평할 사람이 없다. 그건 창작을 하는 작가도 마찬가지다. 누가 조언을 듣고 고친 다음에 다시 보이려고 하겠는가. 그냥 심심해서 쓰는 건데. 심심해서 쓴다. 그냥 쓴다. 이 벽을 뛰어넘는 것이 바로 작가다. 아직 한국 장르계에는 작가가 없다. 작가를 만들 수 있는 장르 문학상이 정말 절실한 시점이다. 결국 장르 문학상을 운영할 수 있는 건 목 마른 사람, 출판사다.

 

 이 땅에 시드 노벨 말고는 야심을 가진 출판사가 하나도 없는가.


(김유정씨 까려고 쓴 글이 아닙니다. 혹시라도 보고 있다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