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읽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화차]였다. 화차는 신용 불량으로 인해 한 인간이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를 그린 감동적인 소설이었다. [화차]를 읽고 나서 아, 이 작가는 정말 대단하구나하는 생각을 했지만, 후에 찾아서 읽을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최근에 북스피어를 통해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이 여럿 소개되면서, 읽어야겠다 읽어야겠다 하고 생각은 했지만, 실천은 언제나 어렵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에 우연한 기회로 - 공짜로 미야베 미유키의 [이름 없는 독]을 손에 넣게 되었다. 좋아라 하면서 읽었고, 역시 이번에도 깊은 감동을 받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소설을 읽다가 너무 조바심이 난 나머지 "안 돼! 죽이면 안 돼!"라고 소리를 쳤을 정도다. 손에서 책을 떼어놓을 수도 없었고 덮을 수도 없었다. 책으로 빨려들어 갈 것 같다는 말을 흔히 쓴다. 이번에 그게 어떤 것인지 경험하게 되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고 가슴이 먹먹해서, 손가락 끝까지 전해지는 전율에 소름이 끼쳐서, 아무런 말도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미야베 미유키는 정말 대단한 작가다.
하지만 그녀에게 천재라는 말을 쓰는 것은 약간 저어된다. 문학 분야에서는 조금만 이름이 알려져도 천재 작가의 탄생이란 말을 쓰길 좋아한다. 그리고 천재라는 명칭은 어린 작가가 나이에 맞지 않게 조숙하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나는 이 '문학 천재'란 평을 우습게 여긴다. 일단 문학에선 천재가 있을 수 없다. 문학은 인생 그 자체이고, 인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소설이든 시이든 어떤 문학 장르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없다. 겨우 스무살을 넘은 작가가 - 이를테면 랭보나 이상이 - 70대 노인이 된 문학 평론가에게 감동을 준다고? 가능성은 두 가지다. 그 문학 평론가가 인생을 헛살았든가 아니면 랭보나 이상은 그저 문학적인 신화에 휩싸였을 뿐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현재 쉰이 가까운 사람이다. 박완서씨에게 천재라고 한다면 얼마나 웃기겠는가. '천재'란 이름은 역시 애송이에게나 어울린다. 함부로 천재라고 하지 말 일이다. 그건 그 사람을 욕하는 거니까.
하지만 어떻게 [이름 없는 독]을 읽고도 그녀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천재' - 하늘이 내린 재능이란 찬사는 그녀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 하늘이 미야베 미유키를 내린 것처럼 땅은 이 세상을 지탱하여 그의 소설을 사람들에게 읽힌다. 세상은 그녀의 소설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과언過言인가? 그렇다 해도 좋다. 그녀가 찬사를 받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찬사를 보내겠는가. 박태환? 그 '천재' 얘기는 그만 하도록 하자.
[이름 없는 독]에는 탐정이 나오지 않는다. 범인은 있지만 악인은 없다. 주인공은 추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지만 결국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현대로 들어오면서 과거의 퍼즐 미스테리 - 트릭을 통해 즐거움을 주는 추리 소설의 본령은 말라버렸다. 대신 레이먼드 챈들러나 대실 헤밋을 필두로 해서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을 탐구하는 하드 보일드, 범죄 소설이라고 불러야 적절할 장르들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더 이상 탐정들은 방구석에 갇혀 1000 피스 짜리 조각 그림을 맞추지 않는다. 그들은 거리에 나와서, 이 지상에 내려와 숨을 쉬고 범죄에 말려든다. 때때로 그들 자신이 범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왜냐하면 현대전이 민간인과 군인의 경계를 지워버렸듯이, 20세기의 범죄는 시골이든 도시든, 선량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부유한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공격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길거리를 걷다가도 히키코모리 흉내를 내는 사람에게 칼에 찔려 죽을 수도 있고, 직장에서 일하다가도 단지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죽을 수도 있다. 미야베 미유키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도시는 익명을 키운다. 그것은 자신의 이름을 감추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내 이름을 목놓아 외치지만 아무도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도 타인의 이름을 알려하지 않는다. 그저 닉네임 하나면, 명함 한 장이면, 전화번호 10자리면 충분하다.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그저 칼 한자루와 분노 한 줌이면 충분한데.
인간의 분노는 그 어떤 해독제도 듣지 않는 가장 강한 독이다. 이름도 없고 형체도 없는 그것은 만인에게 통하고, 즉시 죽여버릴 수 있다. 인간이 탄생한 이후로 끝없이 겪어온 공포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원시 시대에도 인간은 타인을 미워했기 때문이다. 도시의 세상으로 접어들어오자 좀 더 많은 사람을 좀 더 쉽게 죽일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선량한 이들, 무죄한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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