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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변하는 거야

 여자가 남자의 뺨을 때린다. 여자는 도도하게 걸어가고 남자는 고개를 숙인다. 조감하는 카메라 샷. 하얀색 폰트의 카피가 대각선으로 휘어져 들어온다.

 

 사랑은 변하는 거야.

 

 사랑만이 아니라 시장市場도 변한다. 94년만 해도 한국에 장르 문학 시장이란 아예 존재하질 않았다. 판타지? 그게 뭐야? 사람들은 이우혁의 [퇴마록]이 나오자, 귀신 나오고 무당이 나오니까, 심령 소설이나 괴기 소설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나도 퇴마록 국내편을 읽다가 어린 마음에 좀비가 나오고 사람이 죽어나가니까, 아 이건 공포 소설이구나, 싶었다. 당시에는 [공포특급]을 필두로 해서 도시 괴담의 재편집 선집이 한창 유행하던 때였다. 퇴마록은 공전의 히트를 쳤고 전국의 모든 집에 퇴마록 한 권 없는 집이 없게 되었다. 정말 그랬다. 지금 내 서가에도 퇴마록 말세편 전 6권이 꽂혀 있다. 누가 좀 가져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퇴마록의 성공은 시장 형성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퇴마록 이후로 [신비소설 - 무] 같은 소, 중박 작품이 있었지만, 퇴마물이란 장르 시장이 형성되지는 않았다. 그냥 퇴마록은 엄청 성공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퇴마록을 한국형 판타지의 시초로 뽑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잘못된 시각이다. 왜냐하면 퇴마록 이후로 아무도 퇴마록 같은 글을 써서 성공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퇴마록을 읽지 않으며, 그 비슷한 글도 쓰지 않는다.

 

 얼마 전 디앤디 설정 도용 문제로 문제가 되긴 했지만, 오히려 그 점이 한국적인,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야말로 한국에 장르 시장이란 걸 만든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절대적 수치로만 보자면 [드래곤 라자]는 퇴마록보다 덜 팔렸다. 이영도씨의 신작은 출간될 때마다 언론의 주목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우혁씨는 [치우천왕기]를 출간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를 정도였지만, 이영도씨는 [눈물을 마시는 새] 때도 보도자료가 많이 뿌려졌는지 어쨌는지 언론에서 기사를 자주 볼 수 있었고, [피를 마시는 새] 때는 '독자 편집자'란 제도를 통해 동아일보에 관련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다. 황금가지 측의 마케팅 노력도 주효했겠지만 그만큼 이영도라는 이름이 한국의 장르 시장에서 차지하는 몫은 거대하다는 방증이다. 사람들은 이영도가 탄생한 이후로 한국의 판타지도 탄생했다고 본다.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문학 교과서에 쓰레기 같은 인터넷 소설의 전형으로 퇴마록이 아니라 드래곤 라자를 실었겠는가 말이다. 드래곤 라자 이후로 1인칭 시점이 판타지 소설 쓰는 트렌드였음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다들 알 것이다.

 


 드래곤 라자가 출판 된 것이 98년, IMF가 터졌던 시기다. IMF는 우리 사회를 많이 바꿔놨다. 출판계도 예외가 아니라서 기존의 서점 체제가 상당수 붕괴되었다. 교보 문고처럼 대형 서점만이 살아남았고, 허약한 동네 서점은 차례차례 소멸했다. '알라딘' 같은 인터넷 서점이 등장하면서, 동네 서점이 설 자리는 없어진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들의 무자비한 할인 정책은 시장을 왜곡했고 종국적으로는 서점계를 뒤집어놨다. 이제 아무도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서점에 들어가 책을 사지 않는다.

 

 대신 대여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IMF 직격탄을 맞고 거리로 쏟아진 많은 실직자들은 퇴직금으로 도서 대여점을 차렸다. 김영삼 정부의 실업자 대책이 대여점이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 마디로 윗 돌 빼서 아랫 돌 괴는 격. (논지를 벗어나는 얘기지만, 한국 만화 시장의 몰락이 이때부터 본격화한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대여점 수는 한 때 전국적으로 5000 개소가 넘었다고 한다. 5000이면 초판 부수 소화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책의 손익 분기점이 2000~3000권이다. 만약 작가의 몫을 후려치면 1500으로도 가능하다. 당시에는 작가가 인세를 권당 100만원 받았다더라, 혹은 아예 돈도 못 받았다더라하는 얘기가 파다했다. 대신 중학생이 소설을 썼다더라, 고등학생이 판타지를 출판했다더라는 얘기도 많았다.

 

 한마디로 개판이었다는 얘기다.

 

 출판사들은 인터넷 사이트라는 무한한 광맥을 발견했다. 무조건 조회수만 높으면 출간해서 찍어냈고, 대여점은 책만 주면 좋다는 식이었다. 판타지 열풍이란 게 불었고 그 사이에 독자도 늘었다. 신문, 방송 할 것 없이 판타지~ 판타지~를 연호했던 기억이 다들 있을 것이다. 그건 결국 70~80년대 엄혹했던 시절을 대본소 무협으로 견딘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일이었다. IMF다. 경제가 안 좋다. 애들은 걱정하지 말고 판타지나 봐. 대학생들은 괜히 데모질 할 생각 말고 무협지나 봐. 금을 모읍시다! 나라를 구합시다! 구국투쟁! 직선제 개헌! 호헌철폐! 독재 타도! 빅딜! 눈물의 비디오! 하늘을 날고 땅을 찢는다. 여자들을 끼고 살고 한 칼에 우주를 가른다. 내 공력은 100갑자이고 졸라 짱 쎈 투명 드래곤도 캉드쉬 앞에서는 쪽도 못 썼을 걸?

 

 대여점 시장에서도 100만부 대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묵향], [비뢰도]가 보여줬다. 이건 재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개나 소나 뛰어들기 시작했다. 초반에 [용의 신전]이나 [비상하는 매], [하얀 로냐프 강] 같은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을 출판하던 '자음과 모음' 같은 출판사도 곧 대량 생산의 길로 접어들었다. 왜냐하면 그쪽이 훨씬 더 돈이 되니까. 질은 상관이 없었다. 검은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면 충분했다. 그런 와중에 [해리와 몬스터] 같은 괴작들도 속속 대여점 시장에 합류하곤 했던, 정말 황당했던 시절이었다. 책을 펴보면 이모티콘 난무, 의성어 범벅과, 엔터 치기 신공, 붙여넣기 절예가 가득했다. 편집? 그런 게 어딨어. 그냥 긁은 다음에 붙여넣기만 하면 끝인데.

 

 대여점 시장의 이상理想은 간단하다. 일단 작품 수준은 읽을 수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권수가 많아야 한다. 권 당 출간 사이 기간은 짧아야 하고,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해야 한다. 즉, 양의 승부다. 대여점 시장은 드래곤 라자 이후로 수많은 판타지 출간 행렬이 벌어질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다.

 


 국내에 들어온 해외 장르 서적은 매우 고급이기 때문에 마치 장르 문학이란 것 자체가 '쿨'하고 '시크'한 것이고 '된장스러운' 것으로 느껴지지만, 사실 장르 문학은 쓰레기다. 펄프 픽션, 개도 안 물어갈 똥 종이에다 아무렇게나 써갈긴 소설을 코찔찔이 애들 - 안경 쓴 여드름 돼지들이 좋다고 읽어대는 소설이 바로 판타지, SF, 추리, 로맨스, 호러, 스릴러의 실체다. 한국의 장르 문학은 그야말로 장르 문학이 걸어가야 할 정도正道를 걸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30~40년대 펄프 픽션의 전성기는 결국 2차 대전의 불안과 공포, 고도 성장을 준비하는 팽팽한 긴장감 사이를 무마하기 위한 문화적 속임수였다. 언제나 인간은 현실에서 도피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건 소련의 핵무기일 수도 있고, 나치일 수도 있고, 박정희, 혹은 IMF일 수도 있다.

 

 왜 90년대 한국 판타지 혹은 무협은 대리만족적인 성향이 강한, 1인 무적 주인공의 이계 깽판이었냐고? 왜 허구헌날 말도 안되는 현실 도피를 하냐고? 그만큼 현실은 힘들었던 거다. 90년대는 수능 전쟁이 극도로 심화되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사회는 경쟁이란 캐치 프레이즈 아래 단합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은행 다니다 짤렸고, 엄마는 건물 청소 알바를 시작했다. 나는 남들 다 가는 대학에 갖다 바칠 등록금이 없었고, 남은 건 대여점에서 300원, 500원에 빌려 볼 수 있는 판타지, 무협지가 다였다. 왜 아이들이 불법 파일을 돌려 보냐고? 스캔본을 보냐고? 3000원, 7000원도 없냐고? 없다. 없는 아이들이 있다. 없어서 그랬다.

 

 물론 그냥 돈 쓰기 싫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귀찮아서, 인터넷이 더 좋아서일 수도 있다. 구체적인 이유야 나는 알 수 없다. 이야기가 약간 샜다.

 

 어쨌든 이렇게 형성된 대여점 시장은 판타지와 무협 시장을 거의 10년 가까이 끌고 갔다. 이런 체제는 그렇게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70~80년대에 대본소 시장을 통해 무협이 구축한 적이 있는 체계다. 당시 '사무실'이란 걸 차려서 새끼 작가를 두고 무협 소설을 대량 생산해서 몇 십 억을 벌었던 인물이 그 유명한 사마달, 와룡강이다. 와룡강씨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일종의 소설 공장을 차려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잘 먹고 잘 살아서 아주 자랑스럽다는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이들의 천하는 90년대에 거의 몰락했으나, 도서 대여점이란 형태로 부활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역시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공장 체제는 인터넷으로 대체 되어서, 대여점 체제가 부활하긴 했지만, 대본소가 무너진 것처럼, 대여점 역시 무너져 가고 있다.

 

 이제 대여점만으로는 장사가 안 된다. 대여점 체제를 시작했던 '자음과 모음'이 손을 뗐고, 후발 주자였던 '북박스'도 철수했다. '청어람'이나 '파피루스', '로크 미디어' 같은 잔챙이들이 남아 있지만, 이들도 새로 먹고 살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시드 노벨'이다. 시드 노벨은 '파피루스'의 임프린트인가 벤처인가 벤허인가 하는 것인데, 소위 '라이트 노벨'이란 것이 돈이 된다니까 한국형 라이트 노벨을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히고 서점 시장에 뛰어들었다. '노블레스 클럽'이란 것도 나왔다. 이것은 '로크 미디어'에서 뻗친 손길로 단권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심산이다. 이들은 대여점 시장이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인지 어쩐지, 서점 시장 - 빌려 보는 시장이 아닌 사서 보는 시장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사서 보는 시장에서 아성牙城을 자랑하고 있는 '황금가지' 만큼 대단한 성과를 보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황금가지가 이영도 말고 재미 본 작품이 있긴 한지?) 몇 몇 작품들은 5쇄 이상을 찍는 등 괄목할 만한 판매량을 보였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초판 소화를 간신히 하는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서점 시장이나 대여점 시장이나 막장인 건 마찬가지다. 고상한 소설이든 천박한 소설이든 거대 자본이 개입되지 않는 이상, 초판 소화도 힘들다. 어디나 그렇다. 장르 소설이나 순수 소설이나 마찬가지다. 고전 SF도 안 팔리고 미소녀가 나오는 라이트 노벨도 안 팔린다. 왜냐. 현재 한국의 장르 문학 시장은 절대적인 구매자 수가 형편없기 때문이다. 한 때 한국의 SF 구매자 수를 3000 정도로 추산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건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단지 SF를 장르 문학으로 바꾸면. 2쇄를 찍으려면 매니아든 오타쿠든 맨날 책만 끼고 사는 바보들 만이 아니라 일반인도 읽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시드 노벨'이나 '노블레스 클럽'은 반대의 전략을 취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물론 내가 그들이 낸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보고 이런 소릴 하는 건 아니다. 그냥 인터넷에서 욕 먹는 꼬락서니를 보니까 그런 것 같다는 거지.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다. 94년에 들녘이 퇴마록을 출판했을 때 500만부 넘게 팔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98년도에 황금가지가 드래곤 라자를 출판하면서 100만부 넘게 팔릴 줄 알았을까. 2003년 황매가 [그 놈은 멋있었다]를 출판하면서 50만부 이상 팔릴 거라고 꿈이나 꿨을까. 대체 누가 귀여니가 그렇게 많은 책을 팔 수 있을 거라고, 그녀의 작품이 3편이나 영화화될 거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기껏해야 다음 유머 게시판에 올라와서 정신나간 빠순이들이나 읽는 쓰레기였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시장이 변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없던 시장이 생겨나고, 있던 시장이 없어진다. 그 이유는 경제 변화 때문일 수도 있고, 이우혁, 이영도, 귀여니처럼 걸출한 작가들의 출현 때문일 수도 있다. (귀여니는 모르긴 몰라도 10억 이상의 인세를 벌었을 것이다. 영화화 저작권료까지 합치면 얼마나 될까. 이미 그녀는 인생의 승리자이고, 한국 최고의 장르 문학 작가다.) 인터넷이란 게 생겨났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제 사람들이 겉 멋이 들어서 , 음 나도 [스타일] 정도는, [달콤한 나의 도시] 정도는 읽어 줘야지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체 미래를 어떻게 알겠는가. 시장의 변화를 누가 알겠는가. 시드 노벨과 노블레스 클럽은 바로 그 '불확실성'에 승부를 걸었다. 가슴이 뛴다. 바로 여기에 승리의 깃발이 널려 있다. 두 손을 뻗기만 하면 된다.

 

 두드려라, 그리하면 열릴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