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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오늘 읽은 비소설

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네거트

 

 드레스덴 폭격을 아십니까. 드레스덴은 옛 작센 공국의 수도였던 독일의
도시입니다. 한 때 훌륭한 문화 유산을 많이 갖고 있었다고 하네요. 연합군은
전략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이 도시를  7일 낮 8일 밤 동안 폭격했습니다.
이 무의미한 폭격으로 10만명의 독일인이 죽었습니다. 홀로코스트로 죽은
유대인이 몇 명이었죠? 나가사키 핵 투하로 죽은 일본인은 몇 명이었죠?
진주만 습격으로 죽은 미국인은 몇 명이었을까요? 이라크에서 죽어간 민간인들은
몇 명이었죠? 결국 이라크에선 대량 살상 무기가 발견되지 않았죠. 콜린 파월이나
부시가 한 얘기는 거짓된 정보에 기초했다고 나중에서야 밝혀졌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당당하죠. 만약 누군가 칼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고
그에게 우릴 죽일 의도가 있다면, 당연히 응징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커트 보네거트는 그들에게 이렇게 답합니다. 당장 밖으로 나가서 엽총으로
사람들 머리를 날려 버리라고. 나는 총을 든 원숭이가 다스리는 나라의
국민으로 있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나는 차라리 나라 없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커트 보네거트가 지하실에 숨어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남은 후 그는
많은 소설을 썼습니다. 쓰고 쓰고 쓰고 또 썼죠. 하지만 결국 남은 건
정신 분열적인 헛소리와 허탈한 절망 뿐이네요. 세상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거든요. 나이를 그리 많이 먹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죠.
까뮈가 진지하게 생각할 철학적인 문제는 자살 뿐이라고 했다더군요.
커트 보네거트는 84살까지 살았죠. 까뮈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보네거트는
분명히 휴머니스트였거든요. 까뮈는 48세에 자동차 사고로 죽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건 분노가 아니라 희망을 끝까지 부여잡으려는 책임감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라지는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말하더군요.
옛날이 좋았다고. 하지만 우린 정말 좋았던 시절은 과거에도 없었도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공연장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경우
에는 커트 보네거트의 일급 유머 한 권이면 하루 내내 즐거웠습니다. 보네거트가
2차대전을 견딜 수 있게 한 건 웃음과 농담이었습니다. 그건 2차대전을 사는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죠.

 

 이제 보네거트는 농담할 기력마저 없다고 합니다. 그럴 나이가 되셨죠.
그런데도 [나라 없는 사람]은 웃기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농담으로 가득하네요.
그런 걸 프로이트는 블랙 유머라고 했다는군요. 블랙 유머는 세상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가진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커트 보네거트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그걸 잃지 않으셨네요. 아, 역시 소설가는
전쟁을 겪어야만 위대해진다고요? 황석영씨가 베트남에서 돌아온 것처럼
아니면 헤밍웨이가 1차 대전을 겪은 것 처럼?

 

 보네거트 할아버지는 그런 식으로 말한 삼촌을 죽여버리고 싶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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