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 읽은 책/오늘 읽은 비소설

88만원 세대, 우석훈, 박권일

 나온지도 꽤 되었고 화제가 된지도 오래되었는데 이제서야 나는 읽게 되었다. 이유를 말하라면 너무 유명하거나 화제가 되는 책을 읽기가 싫다는 청개구리 기질을 들 수가 있다. 너무 유명한 책에 담겨 있는 내용들은 다른 사람들이 요약 정리해서 신문에서, 방송에서, 일상에서 떠들어준다. 가만히 있어도 책을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작 그 책을 읽는다해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88만원 세대에 담긴 생각은 그간 내게도 충분히 익숙해져 있는, 이미 2000년대 한국사회에 널리퍼져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가 [88만원 세대]가 그리고 있는 사회의 상을 문제시하고 있으며, 우리가 문제시할 정도로 모순점이 극적으로 노출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기륭전자의 1000일 넘는 투쟁이나 KTX 여승무원들의 3년 넘는 장기전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사례이고, 그것의 함의는 상대적으로 소상히 밝혀져 있다. 단지 [88만원 세대]에서는 현상의 이면에 있는 구조를 명료화하고 있을뿐이다.


 [88만원 세대]는 현재 한국 사회를 '세대 착취'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미 사회의 주도세력인 40~50대가 20대의 몫을 제한하고 심지어는 훔치고 있다는 것이다. '세대 착취'는 비정규직과 사교육 열풍을 두 축으로 하여 전개된다. 여기에 20대를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의 마수가 결합하고, 책 안 읽는 20대라는 진부한 공격이 더해진다. 앞으로 다가올 지식사회에서 현재 한국의 20대는 경쟁력이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윗세대 - 50대 이상의 유신 세대와 40대의 386세대의 탓이라고 단정한다.

 즉, [88만원 세대]의 핵심은 20대의 문제점이나 불행한 미래를 폭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기성세대에 대한 공격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저자는 불행의 씨앗은 개인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20대를 규정불가능한 존재라고 규정한다.
 
 삼성의 20대에 대한 인식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잘 모르겠다"와 "그래도 중요하다". P.92

 

 그만큼 지금의 20대를 정의하거나 정형화해서 표현하기는 어렵다. 신문사 기자, 방송국 PD와 작가 그리고 사회학자나 정치학자 등의 사회과학자, 이렇게 세 그룹으로 나누어서 약 50명 정도의 지인들에게 질문을 해본 적이 있다. 그들이 조심스럽게 보인 첫 번째 반응은 "잘 모르겠다"이고, 두 번째 반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대와 뭔가 다르다"라는 것이다. P.93

 

 지금의 20대는 특징이 없다는 것이 아마도 가장 큰 특징일 것 같다. '어떤 20대에 해당하는 말들 중에서 '모든 20대' 혹은 '굉장히 많은 20대'에 해당하는 명제는 거의 없다. "자유롭다", "발랄하다", "영어를 잘 한다", "너무 고시를 많이 본다", 그 어떤 명제도 20대 전체에 대해 유효하지는 않다. P.94

 

 처음부터 자신은 20대를 이해하지 못했노라고 고백한 저자의 전략은 비교와 대조이다. 저자는 일본이나 프랑스 같은 외국의 20대와 한국의 20대를 비교하고, 한국의 유신세대, 386세대와 20대를 비교한다. 20대를 그 자체로 규정할 수 없기에, 20대 이외의 세대를 규정함으로써 현재 한국의 20대를 역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역규정은 마치 20대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저 타자에 의해 정의될 수밖에 없는 객체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러한 무의식적인 의도는 박권일씨의 에필로그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10대와 20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탈식민주의 이론가 가야트리 스피박의 말처럼 "하위 주체는 스스로 말할 수 없기"때문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한국사회가 집단적으로 젊은 세대에게 '희망고문'을 가하고 있는 탓이라고 본다. P.312

 

 문장 자체는 20대의 가능성을 믿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문에서 발견되고 있는 몰이해와 경멸은 저자들이 끝까지 감출 수 없었던 본심은 아니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내 편집증의 발로라고 봐도 좋다. 그러나 공저자인 우석훈 씨가 일전에 "20대에게 내 책을 환불해주겠다"고 한 발언이 단순히 화를 참지 못한 발언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88만원 세대]가 20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책의 연구주제가 20대라고 해서, 심지어는 이 책이 온갖 미사여구로 20대에게 길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 책 또한 '희망고문'이 아니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희망 고문'이란 헛된 희망이 아니라 언제나 실현가능한 희망을 보여주고, 그 바로 앞에서 희망을 박탈한다. 이는 단지 눈속임에 불과한데, 희망을 성취할 수 있는 주체가 누구이냐를 밝히지 않고, 희망을 성취할 수 있는 정확한 자격 요건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희망의 통계적 성취 가능성만을 제시한다.


 88만원 세대가 세대 착취 현상을 종결할 수 있는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들을 살펴보자. 사교육의 정책적 금지, 대학의 국유화, 종신고용이나 정규직 비율의 인위적 조정, 독과점 금지, 비정규직 최저임금 인상, 생태건전성을 지키는 개발, 예술 분야에서의 다양성 보장, 동아시아 3국 연대. 아니씨발 이것들 중에서 20대 할 수 이는 일이 대체 하나라도 있는가. 88만원 세대는 20대에게는 정치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자신들만의 덩치인을 탄생시킬 수 없다고 이미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정치적, 정책적 대안만을 제시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도인가. 이건 20대의 문제는 기성세대인 우리가 풀어주겠으니 너희들은 내 책이나 읽으라는 말이다.
 [88만원 세대]는 심지어 20대를 대상독자로 하고 있지 않음을 아예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생태경제학에서 사용하는 '다음 세대', '복원성(resilience)' 그리고 '다양성(diversity)' 등의 개념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10대 후반의 청년이라면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나름대로 세밀한 주의를 기울였다. p.22

 

 나는 지금 이 책을 읽는 독자가 10대 후반 정도이기를 희망하지만 그보다 어려도 상관없을 것이다. p.215

 

 20대는 서술 대상일뿐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있어서 현재 20대는 구멍이다. 저자는 20대가 구멍이 된 이유와 그 구멍을 막을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정작 그 구멍을 메울 책임을, 애초에 그 멍을 만든 기성세대에게 돌림으로써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다. 20대를 단지 책을 쓰기 위한 재료로만 삼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박권일씨가 322쪽에서 거론하고 있는 '카운슬링을 가장한 모욕을 퍼붓고는 그 글들을 모'은 책과 쌍둥이다. 단지 그 책의 저자는 우파이고 이 책의 저자는 좌파라는 점만이 다르다. 한쪽은 그나마 솔직하고 다른 한쪽은 위선적이기까지 하다. 한쪽이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한다면 다른 하나는 명확한 해법과 동정심을 동시에 갖춘 채 하면서 속으로는 20대를 정박아 취급하고 있다.


 20대는 책을 읽지 않는다. 사실일까. 책을 읽는 것과 영상 매체를 접하는 일 중 우열을 따지는 것은 시대 착오적이 아닌가. 그리고 정말로 20대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 경험칙말고 다른 방식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인가.

 

 인적 자본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386세대를 다른 세대와 비교한다면, 해방 이후 가장 많은 독서를 했던 세대이고, 현재도 가장 많은 독서를 하고 있기 때문에 포디즘 이후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대해서도 이전에 비하면 확실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편이고, 독서할 여력이 없는 다음 세대에 비해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사교육에 의한 지적 소화력 상실의 집단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 세대는 포디즘 이후에 새로 생겨날 변화들에 대해 오히려 지금의 20대보다 훨씬 높은 적응능력을 가지고 있다. p.179

 

 책을 많이 읽으면 컴퓨터도 잘 다루게 되고, 인터넷도 능수능란하게 되고, 영상매체와 사교육에 중독된 세대보다 뛰어나게 된다? 이런 근거없는 속설과 편견으로 무장한 저자의 논리구조는 편협하다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책을 읽지 않으면 인적 자본이 형성되지 않는 걸까? 책 만이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매체라고 대체 누가 단언할 수 있는가. 적어도 경제학자와 기자 나부랭이었던 두 저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연 게임이나 영상, 하이퍼 텍스트는 책과 동일한 층위의 '지식'을 전하고 있는 걸까. 책과 그 이외의 매체가 가지고 있는 정보 전달 능력 및 내용은 비교할 수 없는 성질이 아니다. 게다가 책만이 인간의 사고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관점은 실증된 자료에 의해 뒷받침된 것도 아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들이 20대를 공격하고 있는 논리란 그들이 경계하고 있는 바로 그 '꼰대'의 것이다.


 빌어먹을 꼰대들. 꼰대가 자신이 꼰대인 줄 알면 어디 꼰대인가. 20대가 얻어야할 해법은 꼰대의 것이 아니어야 한다. 나는 [88만원 세대]를 읽고 분노한다. 대체 왜 우리는 이 꼰대 녀석이 나를 감히 규정씩이나 하고, 애들 턱받이 받쳐주듯이 해법까지 제시하도록 놔두는가. 20대는 명령이 필요없고 영웅이 필요하지 않은 세대다. 촛불 시위에서 보지 않았는가. 20대는 영웅을 거부하는 한국 최초의 세대다. 해법은 우리 스스로, 각자 자신이 만들어내야만 한다. 일률적인 해법으로는 안된다. 나에게 맞고 모두에게 맞는 해법을 내손으로 발로 만들어야 한다. 내 손으로 직접 해라. 이런 빌어먹을 책이나 읽고 깝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