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행동이란 정치적인 영향력을 끼치기 위한 비폭력적인 의사 표현 행위를 말한다. 촛불을 켜고 행진하는 것에서부터, 파업, 도로 점거, 피켓 시위, 단식등을 포괄한다. 저자인 에이프릴 카터는 이 책에서 직접 행동에 관련된 정치학 이론을 포괄적으로 서술하고, 세계적인 직접 행동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책의 주된 내용은 현대의 직접 행동은 궁극적으로 반세계화 운동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 방향성과 방법론, 역사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서야 촛불 시위라거나 세계 정상 회담 반대 시위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촛불 시위 때 몇가지 쟁점이 있었다.
1. 비폭력은 무조건 옳은가?
많은 사람들이 촛불 시위에서는 폭력을 써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 점에 관해서 어떤 사람은 폭력이 옳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희생이 있어야 혁명이 완수된다는 둥 많은 혼란이 있었지만, 에이프릴 카터는 다음과 같이 명쾌하고 정리한다.
일단 폭력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일부 폭력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불가피한 것이어야 하고, 만약 폭력이 사용된다면, 그것은 더이상 직접 행동이 아니라 게릴라 전이 될 수 있다. 현대의 군사력, 경찰력은 너무나 강해졌다. 때문에 촛불 시위 때처럼 청와대로 진격했다가는, 혹은 경찰 버스에 불을 질렀다가는 당장에 사격 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
한국의 특성상 지휘관들이 사격 명령이 응하지 않을 가능성은 솔직히 거의 없다. 물론 세계적인 사례를 찾아보면, 군인들이 민간인 사격 명령을 거부하고 옷을 벗음으로써 혁명이 완수되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4.19 혁명,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보듯이 한국의 군경은 시민들에게 총을 쏘는 일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만약 촛불 시위 때 청와대로 진격했다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런 것은 결코 직접 행동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직접 행동은 오로지 비폭력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며,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직접 행동의 수행자들이 폭력을 쓰면 공권력은 강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자연히 직접 행동자들의 정당성이 저하된다.
촛불 시위 때 무조건 비폭력을 외쳐야만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 거리의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를 저해하는가?
물론 다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에이프릴 카터는 직접 행동이란 민주주의의 결손이 발생했을 때 이를 보완하기 위해 발생한다고 말한다. 즉, 촛불 시위는 민주주의가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서 생긴 것이다. 때문에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할지언정, 결코 저해하지는 않는다.
이미 촛불 시위 때는 국회가 마비된 상태였다. 어째서 국회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 탄핵안을 상정하지 않았는가? 상정은 커녕 발의도 되지 않았다. 그냥 놀고 있었을 뿐이다. 대의 민주주의면, 국회가 뭔가 행동을 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결손이고, 직접 행동을 부르는 원인이다.
직접 행동은 직접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천하는 행위이다. 대의 민주주의에 비해 직접 민주주의가 우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혁명의 장소에서는 먼저 직접 민주주의가 실행되고, 그 후에야 대의 민주주의로 이행한다. 직접 민주주의는 혼란의 순간에, 당장 지금 여기에 민주주의가 필요한 순간에 움직인다. 직접 행동은 민주주의가 없는 곳에 민주주의를 가져다 준다.
촛불 시위는 민주주의였다. 대의제를 훼손하더라도 괜찮다. 대의제는 결코 훼손되지 않았다. 이미 훼손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3. 직접 행동은 불법이 아닌가?
촛불 시위 때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느니, 낙서를 하지 말라느니, 도로 점거는 도로 교통법 위반이라느니, 야간 집회는 집시법 위반이라느니, 불법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그렇다. 직접 행동은 불법일 수 있다. 하지만 야간에 집회를 여는 것은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다. 법이 잘못된 것이다. 법이 잘못되었다면, 그 법을 어김으로써 저항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직접 행동의 이상이다.
단, 처벌을 피하는 것에 있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직접 행동으로 불법을 저질렀다면 당연히 처벌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직접 행동을 했다면, 불법 정도는 괜찮다고, 처벌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자 쪽이지만, 후자라도 좋다.
정부는 공무원이 정당에 가입하는 걸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전교조도 한때 불법이었다. 그러나 어째서 공무원이 정치적 의견을 가지면 안되는가. 어째서 공무원은 노조를 가지면 안되는가. 이는 옳지 않다. 그렇다면 직접 행동이다! 불법이라도 좋다!
4. 촛불 시위에 지도부는 필요한가?
촛불 시위 때 수많은 단체가 자신들이 지도부라고 자처하고 나섰다. 어떤 바보 같은 단체들은 자기들끼리 수배까지 당하고, 마치 자신들이 촛불 시위의 배후라도 되는양 굴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촛불 시위의 어떤 부분은 분명히 조직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직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직접 행동의 또다른 특징이다.
직접 행동은 완전한 수평적 의사체계를 가진다. 사람들은 더이상 지도부를 갖기를 원하지 않으며, 수직적인 조직도 거부한다. 그들은 조직되지 않는다. 직접 행동은 민주주의의 완전한 이상을 체현하는 존재이다. 지도부는 너희들이나 해라. 그런 것은 필요없다. 지도부는 나중에 정치인이나 되려고 안달하는 녀석들이고, 자기들은 지시만 내리고 뒤로는 협잡이나 하는 무리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면서, 자기들은 독재를 하는 바보들이다. 직접 행동은 그런 바보 지도부를 두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로, 생각으로, 오롯이 원해서 나선다. 그것이 바로 직접 행동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연 촛불 시위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과연 촛불 시위는 비과학적인 소문에 현혹된 바보들의 놀이였는가. 아니면 이명박 정부의 폭정에 항거하는 민주주의의 쾌거였는가. 둘 다 맞다. 대중은 대부분 바보다. 어떤 직접 행동은 분명히 어리석은 이유에서 탄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혼동해서는 안되는 것은, 어떤 사람이 바보 같다고 해서, 그 사람이 속한 운동에 있는 모든 사람을 바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촛불 시위는 단순히 소문에 현혹된 것도 아니고, 반정부 시위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 체계에 대한 거부였다. 이 체계란 무엇인가? 바로 세계화다. 미국에서 소고기를 잘못 만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는 이 이상한 현실을, 우리는 바로 세계화라고 부른다. 물류와 정보의 긴밀한 교류를 우리는 세계화라고 부르고, 이 세계화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단지 촛불 시위가 반세계화 운동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그때는 표현하지는 못했던 것 뿐이다. 촛불 시위는 분명히 반세계화 운동으로 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반세계화 운동이기도 했다. 이명박 아웃이나 미친 쇠고기 너나 처먹어 같은 편협한 구호 속에 숨겨진 진실은, 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체계에 대한 반감이었다.
바로 이 점을 지적하지 못했기에, 촛불 시위는 실패했다. 그 힘을 다 사용하지 못했다.
촛불 시위 이후에 미국산 쇠고기는 수입되었다.
이명박은 여전히 건재하다.
탄핵 따위가, 쇠고기 따위가 이슈가 아니었다.
노동 유연화와 금융 시장 개방, FTA로 인해 미친 미국 쇠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세계화]가 이슈였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점을 인식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세계화란 미국이 주도하는 거대한 질서다. 모든 나라가 동일한 조건의 노동과 물류와 정보를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폭력이다. 세계화가 진행되면, 우리는 미친 쇠고기든 뭐든 안 먹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국은 우리의 수출길을 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이 말했듯이 국제적인 약속은 일단 하면 돌이킬 수가 없다.
그런데 그 '국제적인 약속'이 발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축산업자들, 거대 식육 회사들의 로비로 인해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어쩔 수 없이 혹은 기꺼이 미국 쇠고기를 샀다. 광우병이 있든 없든, 우리는 자동차를, 핸드폰을 팔아야 하기에 미국 쇠고기를 샀다.
세계화는 이처럼 국가간의 자유로운 무역을, [강제적으로라도] 하게 하기 때문에, 나쁘다. 쇠고기를 수입 안 할 수가 없게 만든다. 이명박이 나쁜 건 사실이지만, 그 또한 세계화라는 이 빌어먹을 체계 속에 속한 하나의 장기말에 불과하다. 세계화의 특징은 국민 국가 정부의 권력이 약화되고, 다국적 기업의 힘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경제 체제나 국가를 강제하는 국제 협약이 개별적 국민국가를 압박하는 형국인 것이다.
때문에 촛불 시위 때 그 난리가 났어도 쇠고기는 수입되었다. 아마 이명박이 탄핵을 당했어도 결국 나중에 쇠고기는 수입되었을 것이다. 그건 대통령도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촛불 시위는 대상을 잘못 잡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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