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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오늘 읽은 sf

최후의 날 그후, 노먼 스핀래드

 [최후의 날 그후]는 [리보위츠를 위한 찬송]의 저자인 월터 M. 밀러 주니어가 편집한 선집이다. 핵전쟁 이후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sf 단편 14편을 모았다. sf에서는 '포스트 홀로코스트'라고 해서 세계가 멸망한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에 대해 다루는 하위 장르가 있다. [리보위츠를 위한 찬송]도 포스트 홀로코스트에 속하는 작품이다. 책에서는 1급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정말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예전에 시공사에서 나온 적이 있는 책인데 현재 절판이 되었다.

 

 월터 M. 밀러 주니어는 [리보위츠를 위한 찬송]을 쓴 이후로 변변한 글을 쓰지 못하고 평생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죽었다. 선집을 만들게 된 계기도 뭔가 편집증적이다. 그의 긴 서문은 현재 세계가 핵전쟁 위협에 시달리고 있으며 선집에서 소개한 sf들은 경고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번역한 김상온씨의 번역 후기를 보면, 이러한 편집증이 원편집자만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김상온씨는 북한의 핵보유를 거론하며, 북한의 핵사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 책을 번역했다고 밝히고 있다. 즉 이 sf 선집은 그냥 재미로 묶여진 책이 아닌 것이다.

 

 원 편집자인 월터 M. 밀러 주니어가 이 책을 편집한 시기는 한창 냉전이 극에 달했던 80년대이다. 책에 수록된 작품들이 쓰인 시기는 2차대전이 끝나고 막 냉전이 시작되던 50~60년대. 그리고 이 책이 번역된 것은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암묵적으로 해무기 보유 클럽에 가입한 2000년대의 한국이다. 외부적인 상황만 봐서는 매우 묘한 일치다. 사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고, 그들이 그걸 언제 사용할지 모른다는 건 엄연한 현실이다. 얼마전에 뉴스를 봤더니 미국 국무장관인가 국방장관인가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공개적으로 인정했다고 한다. 물론 금방 철회했지만. 이번에 대통령이된 오바마도 선거 유세 때 북한이 최소 8기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럼 우리 이제 다 죽는 거야?

 

 물론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세상이 멸망한다기보다는 한 사람의 생명이 사라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상의 멸망을 목격한다면, 그 순간에 우린 살아 있을 것이고, 우리가 죽는다면 그 후에 세상이 멸망하든 안 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죽은자는 말이 없으니까. 멸망이란 개념은 아주 웃기는 것이다. 포스트 홀로코스트 소설은 때문에 사망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고통이란 건 죽음이 아니라 생에서 온다. 살아있는 것은 언제나 고통이다. 특히 세상에 핵무기가 떨어져서 남은 것이 하나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어버렸다면, 나도 병에 걸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면.

 

 [최후의 날 그후]는 위에서 말한대로 상당히 계몽적인 의도로 편집되기는 했으나 참여한 작가의 면면은 꽤나 화려하다. 레이 브래드버리, 아서 클라크, 로저 젤라즈니, 마이클 스완윅, 폴 앤더슨, 로버트 셰클리, J.G. 발라드. 때문에 작품의 수준도 높고 재미도 있다. 물론 이야기가 전부 세상이 핵무기로 멸망했고 남은 사람들은 퇴락한 문명 속에서 발버둥을 치며 살아간다는 내용 일색이라서 읽다 보면 지루해지기는 한다. 하지만 할란 엘리슨의 [개와 소년]처럼 충격적이고 매력적인 작품이 있으니 이 작품집은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