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로봇은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로 널리 알려진 제목이지만, 사실 유명 sf 작가인 고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집 제목이기도 하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로봇 공학의 3원칙이라는 것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데, 이 원칙은 나중에 수많은 sf 작가들에 의해서 차용되고, 급기야는 실제로 로봇을 만들 때 준수해야할 규칙으로까지 격상되기에 이르렀다. 바로 이 점이 로봇 소설가로서 아이작 아시모프를 전 세계인의 기억속에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소설 자체는 그다지 높은 수준이라 할 수는 없고, 단지 원형이라는 점에서만 주목할 만하다.
이 단편집은 각기 시차를 두고 잡지에 발표한 것을 장편의 형태로 모은 '픽스업' 장편이다. '픽스업' 장편이란 단편 소설들을 유기적으로 구성하여 마치 장편처럼 꾸민 것을 가리킨다. 단편집의 초반에 실려 있는 '로비'는 1940년도에 발표된 것으로 아시모프가 19살 때 쓴 것이다. 이 작품은 내용이 평이하고 약간 유치한 면이 없지 않다. 마지막 작품인 '피할 수 없는 갈등'은 1950년에 발표되었는데 초반에 실려 있는 '로비'나 '큐티'와 비교하면 같은 사람이 썼다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작품 성격이 달라진다. '로비'에서는 단순히 유용한 가전제품이던 로봇이 '피할 수 없는 갈등'에서는 인간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거대한 존재로 성장한다. 이에 맞추어 소설의 주제 또한 가정 문제에서 세계의 운명으로 커진다. 이를 다루는 서술 방식에서도 진보한 일면을 보인다. '로비'에서는 단순히 사건을 시간순으로 배열하는 일에 그쳤다면, '피할 수 없는 갈등'에서는 세계를 각각의 삽화로 조망하고 이를 총합하여 마침내 수수께끼가 풀리는 세련된 구조를 만들어냈다.
중반의 '큐티'라거나 '스피디'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작품으로 추리 소설의 구조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트릭이 정말 형편없이 재미 없다. '데이브', '네스터 10호'도 마찬가지다. 그에 반해 '허비'나 '바이어리'의 경우에는 꽤 괜찮았고, '브레인' 같은 경우에는 대충 읽을 만했다. 작품집의 70%는 너무 낡고 평면적인 이야기라서 정말이지 구식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시모프의 로봇은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공각기동대나 영화 아이 로봇에 나오는 인간과 유사하면서도 매우 강력한, 어떻게 보면 인간보다 더욱 인간 같은 '안드로이드'가 아니다. '안드로이드'가 생체 조직과 기계의 결합으로 인한 신인류를 말한다면, 아시모프의 '로봇'이란 로봇 공학의 3원칙에 강력하게 구애받는 일정한 논리 체계에 가깝다. 이 논리 체계는 각각의 소설에서 현실적 위기로 공격받고, 이 논리 체계를 어떻게 방어해낼 것인가가 바로 소설의 관건이 된다.
때문에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에게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로봇 이야기를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일본 만화나 애니에서 주로 나오는 정체성 이야기나 한국의 유사 sf에서 많이 써먹는 로봇의 반란은 아시모프의 관심 사항이 전혀 아니다. 아시모프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만들어낸 '로봇 공학의 3원칙'이 현실에서 작용하는 상징으로 로봇을 등장시키고, 이 로봇을 통해 자신의 원칙을 확장하고 변형하고 이리저리 뜯어보는 사고 실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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