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공연을 보면 기겁을 하게 만드는 밴드가 있다. 노래가 좋아서일 수도 있고, 너무 연주를 못해서일 수도 있고, 술에 꼴아서 무대에 섰기 때문일 수도, 갑자기 바지를 벗고 성기를 노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노래가 그리 좋지도 않은데, 연주는 그럭저럭 하면서도, 바지를 벗지 않았는데 날 기겁하게 했다.
어제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의 마지막 공개 오디션이 있었다. 무려 20여팀이 2곡 씩 연주하는 공연이었는데, 나도 거의 4시간 가까이 봤다. 고고스타처럼 눈이 확 뜨이는 밴드도 있었지만, 대개 고만고만했다. 공연장에는 사람들이 유난히도 많았다. 아무리 에어컨을 세게 틀어도 온도는 30도에 육박했다. 열기와 지겨운 노래에 사람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나도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염을 기른 남자가 밴드와 함께 무대에 올라섰다. 잔뜩 허세를 부리면서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싸구려 커피]. 라이브로 보지 않고서는 결코 진가를 알 수 없는 노래다. 장기하씨(본명인지?)의 유쾌한 음색과 표정, 느릿느릿한 연주자들의 능청스런 연주를 듣다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도대체 이 넋두리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엉터리 랩은 뭐란 말인가. 장기하씨가 [눈뜨고 코베인]의 멤버라는 사실을 알면, 그의 우리말 작사 실력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그 어리둥절한 유머 감각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 있다. 가사를 곱씹을수록 맛이 난다.
게다가 이 80년대스러운 음악은 대체 무엇인가. 김추자의 [커피 한 잔]을 연상하게 한다.
사람들은 무대로 몰려들었고, 그들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아니 그들을 보기 위해서 발돋움을 했다.
"자, 1부 끝 곡으로 들려드렸던 곡은 싸구려 커피였습니다. 이제 2부를 시작하겠습니다."
어차피 2곡 밖에 연주 못하는데. 이 엄청난 허세란!
"자, 섹시한 코러스 걸 미미 시스터즈를 소개하겠습니다."
선글라스를 쓰고 반짝이 의상을 입은 여자 두 명이 무대에 등장했다. 섹시하지는 않다. 웃기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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