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 읽은 음악

다 죽자, 크라잉 넛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의 마지막 출연자는 크라잉 넛이었다.

 

 시간은 12시. 이미 무대의 음향 장치는 모두 내려진 상태였다. 사람들은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무대에 설치된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88 잔디 마당에 남은 사람은 500명 남짓. 그들은 택시비를 지불한 각오가 되었거나,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갖고 온 사람이거나, 아예 오늘 밤 집에 가기를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의 엔지니어들은 정말 개새끼들이었다. 밤이라고 해서 스피커도 꺼 버리고, 우리는 떼창도 하지 못한 채, 침묵 속에서 슬램을 해야 했다.


 한경록씨가 우리에게 "여러분 정말 멋지다", "진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라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가 마이크를 붙잡고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말 달리자를 할 때 갑자기 외부 스피커가 켜졌다. 한 곡의 향연이었다. 우리는 미친듯이 떼창을 하고 슬램을 했다. 그리고 끝. 크라잉 넛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났다. 크라잉 넛이 인사를 했다.


 하지만 관객 속 한 쪽에서 노랫소리가 울렸다.


 "나는 거짓말쟁이, 너는 거짓말쟁이!"


 크라잉 넛은 앵콜을 시작했다. 다 죽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곡 후반부에서 한경록씨가 땀과 물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보통 무대에서 보컬이 넘어지면 사람들은 웃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걱정하는 탄식의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모두 한 마음으로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한경록 씨는 아무래도 갈비뼈 부근을 모니터 스피커에 찍힌 모양이다. 그는 정말 제대로 넘어진 것이다. 하지만 웃는 얼굴로 일어나 마이크를 부여잡고 다 죽자를 외치려 했으나, 마이크가 나오지 않았다. 마이크를 집어 던졌다. 다른 멤버의 마이크를 빼앗았다.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두 개, 세 개, 무대에 있는 마이크를 모두 빼앗아 입에 갖다 댔지만, 어떤 것에서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 녀석들이 마이크 음량을 전부 내려버린 것이다.


 한경록씨는 작동하지 않는 마이크를 붙잡고 우리, 지금, 모두, 여기, 다 죽자고, 다 죽어버리자고 울부짖었다.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친듯이 슬램을 해야만 했다.


 크라잉 넛은 연예인이 아니다. 한경록씨를 만나고 싶으면 홍대 클럽 DGBG(드럭)을 가면 된다. 거기 가면 한경록씨가 한 손에는 맥주병을 들고 가끔 공연을 보러 온다. 관객들과 함께 춤을 추고 슬램을 한다. 그는 연예인이 아니다. 크라잉 넛은 아직도 드럭에서 공연을 한다. 축제 한 번 뛰면 1000만원을 받는 크라잉 넛이 30평도 안 되는 작은 클럽에서 공연을 한다.


 10년 전, 크라잉 넛은 자그마한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펑크라는 이상한 음악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들을 알아주지 못했다. 한때는 배가 고파 굶주리기도 했을 테고, 밥대신 술로 한 끼를 때우기도 했을 테고, 홍대 놀이터에서 술을 마시고 잠을 자기도 했을 것이다. 극동 방송국 동쪽 작은 건물의 지하에서 그들은, 그 좁아터진 공간에서 춤을 추며 술을 마셨다. 어느 순간, 그들은 유명인이 되었고, 그들을 인디 밴드라고 부르는 것조차 어색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크라잉넛을 진부하다고 하고, 연예인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하지만, 대체 어떤 연예인이, 2시간이나 밀린 시간에, 12시가 넘은 그 시각에, 순서도 엉망이고 예정된 합동 공연도 아니고, 마이크는 안 나오고, 외부 스피커가 전부 내려지고, 관객은 2만명에서 500명으로 줄어든 그 순간에,


 넘어지고 쓰러지고


 술이라도 마셔야 할 정도로 열이 뻗치는 그 순간에

 

 앵콜곡을 부르고 있겠는가.


 다 죽자. 우리 지금 여기 모두 다 죽자. 한국 인디의 역사는 크라잉 넛과 함께 시작했고, 드디어 그 한 장章이 오늘 크라잉넛과 함께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연 사람이 닫는 법이다. 크라잉 넛을 키운 세상은 변했다. 홍대는 사라졌다.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은 다 죽었다.


 다 죽고 말았다. 진짜 밴드를 하나 남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