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기씨가 쓰던 독서/구매일기를 눈여겨보다가, 또 오늘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보다가 나도 독서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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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코짱은 호시 신이치를 유명하게 만들어주었다던 [이봐, 나와!]라는 작품이 실려있어서 굳이 찾아서 읽어봤다. 호시 신이치는 쇼트-쇼트라는 장르의 대가로 알려졌는데, 쇼트-쇼트란 단편보다 짧은 분량의 기묘한 결말을 주로 하는 소설 형식을 말한다. sf 작가이기는 한데 전체적인 작풍은 우화나 풍자에 가깝다. 로보트나 외계인을 주로 등장시킨다는 점에서는 sf 작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단지 소재를 끌어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사회 전체를 조망해서 미리 예측해보는 외삽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다지 엄밀하지는 않다. 이를테면 알약 하나를 먹으면 갑자기 사람이 엄청난 능력을 얻게 되거나하는 식이다. 이러한 설정은 호시 신이치의 창작 태도 자체가 그리 하드하지는 않다는 얘기다. (여기서 '하드'하다는 건 과학적인 이론이나 법칙을 철저하게 지킨다는 의미이다. 알약을 먹고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전혀 '하드'하지 않다. 과학적으로 말이 안된다.) 한국의 sf 빅 팬인 고장원씨가 과거에 '과학 기술 창작 문예'라는 공모전에서 내세웠던 방법론하고는 동떨어진 것이다. 그는 '적어'씨의 '그의 이름은 나호라고 한다'는 작품을 sf라고 보지 않는다고 자신의 개론서인 '세계 과학 소설사'에 써 놓았다.
호시 신이치의 방법론은 '트라우마'나 '와탕카'와 같은 웹툰의 방법론과 유사하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이야기가 말이 되냐 안되냐를 떠나서, 그저 뒤통수를 칠 수 있는 결론을 낼 수 있느냐 혹은 독자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해줄 수 있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호시 신이치는 외계인이 지구에 착륙할 때 벌어지는 소동 - 퍼스트 콘택트란 소재를 다루기를 좋아한다. 이것은 마치 '와탕카'에서 지구인들에게 무시당하는 외계인이란 소재를 자주 써먹는 것과 유사하다. 그것이 sf이긴 하지만, 사실상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건 독자도 알고 작가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 설정은 매우 유쾌하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많이 제공해준다. 때문에 호시 신이치의 방법론은 sf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 물론 이런 거야 엉터리 방법론 차원의 이야기이고, 사실상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호시 신이치는 일본 sf의 대가로 알려져서 사실 '플라시보 시리즈'를 읽기 전에 기대했는데, 오늘 읽은 3권을 포함해 그의 작품집 대여섯권을 읽어본 결과, 역시 다작은 작품의 질을 떨어트린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개중에는 아주 좋은 작품도 있지만 매너리즘에 빠진 작품도 많고, 기대 이하의 작품도 더러 있었다. 전체적인 수준은 사실 그리 높지는 않다. 일본 문화에 익숙하지 않으면 웃을 수 없는 소재 - '가난의 신' 같은 것을 중요하게 다룬 경우도 있다. 그리고 호시 신이치는 쇼트-쇼트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너무 긴 작품도 꽤 썼다. 거의 보통 단편하고 다르지 않은 분량과 서사를 가진 작품도 꽤 있었다. 그런 작품들도 반전을 가지기는 하지만 역시 작품이 길어지면 반전만 가지고는 힘들다. 그는 단순히 아이디어만 갖고 쓰는 작가는 아니다. 호시 신이치의 작품 세계는 상당히 넓은 것 같다. 그의 작품집을 번역한 '플라시보 시리즈'가 한국에 30권 넘게 번역되어 있으니 차근차근 음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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